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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종해 Apr 07. 2017

자비와 동정과 이해




단골카페에서 그림 작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지하철 입구에서 구걸을 하는 한 노인을 보았습니다.

노인은 위태롭게 서서 허리를 굽힌 채 모자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모자 안에 넣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힘없는 목소리가 제 등 뒤를 따라옵니다.

몇 걸음 사이에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드렸어야 했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여인은 늘 500원짜리 동전들을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을 만날 때면 늘 500원을 내놓습니다.

“천원을 낼 땐 갈등을 했지만, 오백원을 낼 땐 갈등하지 않았어.”

그녀는 하루에 적어도 한번 자신이 생색을 내지 않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홉스는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매우 어두운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폭력적이고 경쟁심이 강해서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며,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홉스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친절하다는 생각에 콧방귀를 뀌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한번은 그가 길거리의 거지에게 돈을 주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어떻게 거지에게 관대한 마음을 갖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말했다.

“난 거지를 도우려고 돈을 준 게 아니오. 

단지 인간의 빈곤을 보며 고통을 느끼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뿐이오.”>

-冊<달라이라마의 행복론> p64-65








지금은 사라졌지만 건대에 <워아이니>라는 와인바가 있었습니다. 

카페 사장님은 나에게 낮엔 운영을 안 하니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라고 했고 가게가 문을 닫는 2011년까지 매일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생의 가장 훌륭한 아뜰리에였지요. 

카페 앞엔 바로 놀이터가 있어서 워아이니 식구들은 나무가 울창한 놀이터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대화들을 나누곤 했었습니다. 

그때 나눈 대화들이 이후 나의 사유에 많은 부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대화들 속에 형(사장님)이 제게 해준 하나의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얼마 전부터 놀이터에 나타나는 한 노숙자를 보았어. 

놀이터의 벤치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편안히 햇볕을 쬐고 있었지.

그리고 며칠 전 우리는 그분에게 커피 한잔을 대접했어. 

커피를 마시면서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 

과거에 작은 출판사를 운영했었고 회사가 도산해서 결국 이렇게 노숙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말했지. 

그리고 맛좋은 커피를 대접해 주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더군. 

다음날 우리는 그 분을 기다렸지. 

하지만 그 후로 그분은 나타나지 않았어. 

그리고 난 깨달았어. 

나의 호기심과 무의식적 호의가 그의 평화로운 휴식을 빼앗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가 7년간 치매를 앓으실 때부터 나는 명절 때 고향으로 내려가는 일이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병간호를 하느라 초췌해진 어머니를 보는 일과 어린 아이가 된 아버지를 보는 일, 

그리고 모든 것이 고장 투성이인 집을 보는 일이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친척들을 보는 일 또한 부끄러움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머니 홀로 시골집에 계시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매일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걸면 어머니는 말씀하십니다.

“전화해줘서 고마워요. 아들”

전화하는 일이 당연한 것인데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늘 이 말을 덧붙이십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같습니다.









달리는 차창에 비친 나를 바라봅니다.

구걸하는 노인의 모습을 생각하니 오래전 치매로 집을 나가 길을 헤매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노인 또한 나의 아버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힘없는 목소리가 아버지 음성으로 제 귓전에 맴돕니다.


2017. 4. 7

-jeongjong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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