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시 / 종이에 아크릴>
얼마동안 이었을까?
달력을 들여다봅니다.
열흘이었습니다. 열흘 동안 또 다시 어둠 속에 갖혀 버렸습니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어둠은 꽤나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참 많이 가벼워지고 밝아졌는데
잠시 외면하였던 틈을 타 찾아온 것입니다.
이유 없이 게을러지고 싶고, 그림을 그리는 순간도 의미없게 느껴졌습니다.
머리에 형상이 사라지고 색도 무질서하게 흩어져버렸습니다.
그 와중에 무언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제 정신을 억누르고 피로하게 하였습니다.
창밖으로 며칠간 계속 짙은 황사만 가득하였습니다. 모든 상황은 점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불안으로 잠이 들지 않았고, 그게 다음날로 이어지고 그 다음날로 이어지고 몸은 피로감으로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이렇게 결국 추락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구나’를 깨닫습니다.
그동안 스스로의 내면을 가꾸기 위한 노력과 잘 정리해온 시간들, 수많은 습작의 흔적들이 꽃을 피울 순간에 잠시 잠깐의 소홀함으로 좌절과 불안을 불러들이고, 감정으로 하여금 그 모든 것들을 소용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 그림의 시작은 점으로 부터입니다. 그리고 그 점은 스스로 목적지까지 달려갑니다. 그 작은 행동이 모든 것을 움직입니다.
그렇게 열흘이 흘렀습니다.
얼마나 이 깊은 어둠이 계속될까 하며 체념하듯 가볍게 밝은 사진들 몇 장을 바라봅니다.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귀여운 이야기가 선명하게 머리를 스쳐갑니다.
놓칠까싶어 메모수첩에 옮겨 담습니다.
단순하던 생각이 조금 길게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지면 참 재미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메말랐던 마음이 조금씩 생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정비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음을 다스릴 책을 펼쳐 읽고 아름다운 풍경의 사진들과 영상을 의도적으로 찾아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금만, 잠시만’ 하던 귀차니즘을 없애기 위하여 정신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지금 당장!’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프랑수와즈 사강
마약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한 그녀의 이 말이 참 고급스럽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길었던 미로 같은 어두운 동굴 밖을 나온 지금 나는 이 말이 사치스럽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다만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 수많은 점이 다음 점을 향하여 수없이 많은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됩니다.
우리가 그림을 완성시켰을 때, 그것이 비록 만족스럽지 못할지라도 비로소 내 마음의 풍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린 마치 기억이 우릴 정의하는 것처럼 기억에 집착하지만, 사실 기억은 우릴 정의하지 않아.
우릴 정의 하는 것은 행동이야”
-영화 <공각기동대>에서 오우레 박사의 말
추락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높이 올라가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걸어가고 있는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매순간 생을 소중하게 여기려는 노력, 그로 인하여 내 정신의 에너지가 세상 밖으로 작은 빛을 발산하고, 나를 비롯한 누군가를 구해낼 수 있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어설프게 할 거면 시작도 하지마!”
- 영화 <18: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에서...
이 대사를 들었을 때 뜨끔했습니다.
마치 “어설프게 살 거면 시작도 하지마!” 하는 말 같았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욕실로 가서 샤워를 하고 다시 나의 자리를 정리합니다.
2017. 5. 9
-jeongjong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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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사막에 있는데, 단지 흙이 섞인 물컵만 갖고 있다고 가정해 보라.
그 흙 섞인 물을 그대로 마실 수 있는 맑은 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그 물을 던져버릴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잠시 그 물을 가만히 내버려두라.
그러면 흙이 가라앉고 맑은 물이 나타날 것이다.”
-책 <틱낫한의 평화로움>. p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