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를 만나면 그동안 하신 혼잣말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제게 쏟아내십니다.
혼자가 되어서 조금 더 그렇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도 어머니는 혼자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시고, 혼자 자문자답을 하시곤 혼자 통쾌하게 웃곤 하셨습니다.
남들이 본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어머니만의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누구도 심지어 남편조차 채워주지 못하는 생기를 스스로에게 불어넣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가끔 저는 그런 어머니를 의식해 어머니의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을 하지만, 그것도 채 2분이 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어느새 흐르는 음악이 되어버리고 나의 의식은 이미 책이나 TV브라운관에 빠져버립니다.
어느날 저는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노인정에 안 가세요? 심심하시면 한번 가보세요.”
어머니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하십니다.
“거긴 노인네들밖에 없잖아.”
가끔 어머니는 거울을 보시며 안타까워하십니다.
“나 주름이 가득하네? 너무 늙어버렸어.
그런데 마음은 아직도 아이같은데, 청춘같은데 말이야.”
요즘은 동네마다 쉼터가 있습니다.
놀이기구도 있고, 벤취도, 운동기두도 한두개 정도 잘 배치되어있는 쉼터가 동네 곳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낮 동안 노인분들만이 햇볕을 쬐고 계시거나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것을 보곤 합니다.
밤이 깊어가면 서서히 청소년들이 어스름한 가로등 아래에서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꼬마아이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아주 어린시절 저는 아침밥을 먹고 나면 무조건 놀이터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나보다 먼저 와 있었으니까요.
처음 보는 아이들이라도 금세 친해졌고 다음날부터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놀이터는 우리의 아지트였지요. 우리는 그곳에 모여서 다른 모험을 계획하고 실천해갔습니다.
전쟁놀이, 오락실가기, 고구마 서리하러 가기, 공사장 웅덩이에서 스티로폼 배 띄우기, 고장난 냉장고에서 고무자석 떼내기, 메뚜기 잡기, 개구리 잡기 등등... 엄청나게 많은 놀이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젠 나이가 든 어린이인 저는 궁금합니다.
“꼬마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끔 혼자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산책을 하면서 고민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어디 가야하지? 조금 전에 커피는 마셨는데, 술은 별로 먹고 싶지 않은데, 밥은 뭐 집에서 해먹는 게 더 좋은데, 영화를 보고 싶지도 않고, 옷도 별로 사고 싶지 않은데... 그럼 이제 어디 가야하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어 갈 때면, 늘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리고, 자괴감이 들곤 합니다.
제 잘못도 아닌데 말이지요.
그래서 요즘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듣게 될 제일 두려운 질문이 그거랍니다.
“이제 우리 어디가지?”
모르겠습니다. 도무지 떠오르지 않으니까요.
돈을 안 들이고 찾아갈 수 있는 아지트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시대가 좋아져서 내가 사는 주변 환경 또한 참 좋아졌습니다.
요즘같이 맑고 따스한 날이면 연남동 공원에는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처음엔 한두 집단이 돗자리를 깔고 앉더니 시간이 지나니 잔디밭을 가득 메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곳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 없이도 쉬고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저렴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우리가 바라는 아지트가 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개들도 산책로가 생긴 것이지요. 개들도 친구를 만나고 뛰어다니는 공간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꼬마들과 청소년들은 그곳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어디에 간 것일까요?
TV에서나 술자리에서나 우리는 늘 말합니다.
아이들이 미래다.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걱정들을 화두에 두고 있습니다.
모두 필요한 고민이고, 앞으로 변화와 개선이 되어가겠지만
무엇보다 지금 거리에 공원에 아이들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른과 함께 한 아이들이 아닌,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이 아닌, 학원, 도서관에 있는 아이들이 아닌, 골목에 숨어있는 아이들이 아닌, 깊은 밤 가로등 아래에 모여드는 아이들이 아닌, 밝은 태양 아래 그들이 주체가 된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보다 훨씬 못살던 시절에도 우리에겐 놀이의 공간이 참 많았습니다.
놀이터가 있었고, 오락실이 있었고, 롤러코스트장이 있었고, 빵집이 있었고, 만화방이 있었고, 떡뽂이집이 있었고, 스케이트장도 있었고, 콜라텍이 있었고... 진정 아이들이 원하는 소통의 공간이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있었지요.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 노래방이니 요즘 아이들의 꿈은 모두 가수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요?
놀이는 단순히 놀이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놀이는 이해와 타협, 그리고 창의력의 바탕을 길러줍니다.
그것이 다시 어른이 되어서 사회성을 키우고, 작은 아이디어로 세상의 변화를 창조하는 힘을 줍니다.
“L : 요즘 시대의 어린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는게 뭔지 모릅니다. 그럴 정도로 너무 많은 물건에 치여 살고 있죠.
당신은 오늘날 같은 사회가 어린 아이들이 더 잘 사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십니까?
S(상뻬): 그런 거라면 잘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거라면 사회가 아이들을 점점 더 소비자로만 대한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죠.”
- 책 <상뻬의 어린시절>중, p113
아이들, 어른들, 노인들...
우리가 만든 세상인데 우리가 갈 곳이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좋은 공간은 단순히 예쁘게, 깔끔하게, 감각적인 색감으로 이루어진 건축이나 조경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공간에는 소통이 깃들어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좋은 공간은 과연 무엇일까요?
함께 생각해 볼까요?
2017. 5. 15
-jeongjongh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