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안아줘

건강하니 참 좋다

by 정종해

<sweet dream / digital>



이주정도 몸이 너무 아파서 이러다 아무것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주어진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때마침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언제 내려오냐는 전화에

이참에 시골에 내려가 요양 좀 하고 와야겠다해서 시골로 내려갔다.


그동안 어머니께서 정성껏 심고 기르신 채소들과 막 자란 대추나무엔 알이 빼곡이 맺혀있었다.

여름 한철 자란 포도나무는 무거운 열매를 떨구고 빈가지를 편안하게 동백나무에 기대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작년보다 더 키가 커버린 석류나무는 빠알갛게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는 마치 수줍은 처녀같이 서있었다.


시골에서의 며칠동안 깊은 잠에 빠졌다.

도시에서도 잠을 잤지만, 이토록 깊은 잠을 잔적이 없었던 것 같다.

도시의 불안에 취하여 휴식이라는 것을 잊고 살아왔다.

이렇게 깊이 잠드는 동안도 계속 통증이 느껴졌다.

쇠해진 기력이 다시 회복되지 못하면 어떡하지?


얼마전 늘 보던 택배기사 아저씨가 어느날 큰 병에 걸리셨는지

늘 다니던 길에서 살이 홀쪽하게 빠진 채 지팡이를 짚고 걷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역시 그렇게 갑자기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jazz bar / digital>



아프니까 하나 둘씩 떠올랐다.

음악에 맞추어 흥얼대며 추는 막춤,

새들의 합창에 맞추어 골목을 거닐던 경쾌한 걸음,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할 것에 대한 설레임,

책을 펼쳐 활자들을 하나둘 섭취하면 어느새 등줄기에 찾아오는 따뜻한 온기...

매일 매일의 작은 에너지들이 준 기쁨들이

아프니까 큰 행복처럼 여겨졌다.






airportup.jpg

<airport / digital>



죽을 먹고, 자극적인 음식을 최대한 줄이고, 물을 마시고, 힘겹지만 조금씩 몸을 움직여갔다.

그렇게 2주가 지난 지금 회복이 되었다.

전에는 느끼지 못한 건강한 것이 참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밀린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시작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다시 막춤을 추며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한다.

송글송글 맺히는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며 “이젠 좋아졌구나. 다행이다”하며 등을 쓰다듬는 듯하다.


청소가 끝나고 책상 위에 놓인 <세계일주 바이블> 몇 페이지를 넘긴다.

목표를 몇 가지 정해본다.

- 악기를 하나쯤 연주하자

- 세계여행을 떠나자

- 영어공부를 틈틈이 해두자

- 매일 일기를 쓰자






기차역up.jpg

<기차역 / digital>



그동안 살면서 너무 큰 꿈만 가지고 있어서 힘겨웠었다.

아프니까 억만장자도 소용없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해온 날들이 안타깝다.

내일이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당장이 소중하다.

40대 초반, 이렇게 아프고 나니까 ‘아, 나도 매일 너무 아픈 노인이 되어가는 출발선에 서 있구나.’ 하고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버킷리스트처럼, 살면서 되도록 서둘러 경험해야 할 것들을 적어나간다.







휴식.jpg

<휴식 / digital>



언젠가 누구나 이 공간을 떠난다.

그 끝에서 후회할 것인가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는 후회하지 않고 싶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다시 건강하니 참 좋다. 감사하다.



2017. 9. 8

-jeongjong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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