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안아줘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

by 정종해

<어느 여행자의 노래 / 2014 / 캔버스에 유화>


최근 기타수업을 받으러 연희동엘 찾아갑니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악기 하나쯤 다루자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내일, 내일 하다가보면 나만의 시간은 영원히 내일에 머물러 있을테니까요.

다행스럽게 제가 아는 지인의 소개로 너무나 적은 비용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또한 훌륭한 기타리스트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벌써 3개월이 지났지만 실력은 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타를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나누는 따뜻한 마음의 온도,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와 각자의 철학들이 의도치 않은 선물입니다.

글을 쓰시는 분, 케잌을 만드시는 분, 술을 주조하시는 분, 옷집을 경영하시는 분, 영화 쪽에서 일하시는 분, 음식점을 경영하시는 분, 직장인...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스스로 따뜻한 공간을 찾아 모여들고 잘 어우러지는 모습들이 제겐 무엇보다 특별했습니다.


“모두들 저를 낯설게 대하지 않으시고,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너무 고마운 것 같아요!”

“여기 사람들은 다르지 않아. 그건 네가 여기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같기 때문이야. 어떤 사람들은 처음 이 공간이 좋아 찾아오지만, 곧 그들 스스로 떠나버려. 그건 이곳의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문제지.”

저의 기타 스승 노선생님은 말했습니다.







<회귀 / 2014 / 종이에 아크릴>


시간이 지나 저에게서 그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겨 두 분에게 그림수업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분은 케잌을 만드시는 이씨, 한분은 옷가게를 하시는 셀리님...

그림에 관해 알려드리면서 또한 제가 배우는 것이 하나둘 늘어갑니다.

한분은 섬세하고, 한분은 디자인적인 감각을 타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참 다르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매력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느날 노선생님과 함께 케잌을 만드시는 이씨의 작업실을 찾아가 커피를 대접받았습니다.

결코 살면서 경험하기 어려운 장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빵을 만들고, 케잌을 만들고, 요리를 하는 일들이 또 하나의 예술장르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작업실은 마치 화실, 공방과도 같았습니다.

물감대신 케잌에 들어가는 다양한 재료들이, 실패한 도기를 무참하게 폐기하듯 음식물 봉투에 수북이 담긴 만족스럽지 못한 케잌의 결과물들이...


그가 그림수업에 참여하면서 제게 했던 말들이 하나둘씩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요즘은 고민이 참 많아요. 제가 케잌을 만들면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지만, 대중들이 원하는 것 또한 따로 있더군요. 그것을 잘 절충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저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군요. 저 역시 만족을 해야 하니까요. 그게 참 어려워요. 수없이 실험을 하지만 사실 어떤 것이 정답이다라고 딱 정할 수도 없거든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딱 정답이라고 결정을 내리고 추진해가는 사람이 가끔은 부러워요. 아무튼 그것은 앞으로 제가 고민하고 해결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오늘 수업 중에서 제가 얻은 게 하나 있어요. 저는 지금까지 자세히 바라보는 일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세히 바라보면 보이는 것들 말이죠.”







<행복 / 2009 / 캔버스에 아크릴>


어느날 기타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스승 노선생님은 제게 말했습니다.

“최근에 이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보다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를 생각해야한다는 것을 말이야. 우리는 잘 살기위해 살다보니 사실 잘 살지 못하고 죽어가. 그런데 잘 죽기위해 살다보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 관뚜껑이 닫힐 때 잘 살았다하면 그게 제일 만족스러운 삶이 아니겠어?”







<장농 속에 잠든 마을 / 2009 / 캔버스천에 아크릴>


처음엔 이 말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시간이 지나도록 곱씹을 때마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유일한 정답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스승의 말이라서 아니라, 해답을 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곳을 여행하다 지쳐 돌아온 한 사람이 자신의 집에서(그것도 아주 단순하게도) 지금까지 찾아 헤매던 바로 그 해답을 발견한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모든 것들이 감사합니다.


2017. 11. 8

-jeongjong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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