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여긴 고요한 평온이었다.
강아지 털처럼 포근한 흰 잔디가
자라있었다.
원한다면 언제든 새들을 불러올 수 있었다.
원한다면 언제든 꽃들을 피울 수 있었다.
나무와 구름과 녹슨 열기구와 무지개
무지개 너머의 아름다운 성
사랑하는 사람은 그곳에서
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너는 아프다.
먹구름을 몰고 온 하늘엔 검은 비가 내렸다.
날카로운 번개가 대지를 찌르고
흰 잔디는 어느새 붉게 물들어갔다.
사랑하였던 모든 것들은 겁에 질려 달아났고
너는 열심히 불러보았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낯선 이방인들은 너를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너는 좁은 헛간으로 숨어들어갔다.
너는 죄가 없다.
만약 이런 것이 죄라면
너는 꿈을 꾼 죄밖에 없었다.
너는 너처럼 살아온 죄밖에 없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린다.
그날 모든 일이 벌어졌다.
정신없이 가슴으로 쏟아졌던 검은 비와 번개와
미친 군중들...
그리고 이유를 모르고 떨고 있는 너...
죽을 것처럼 아팠다.
너는...
작은 빛 한줄기가 보인다.
실처럼 가녀린 빛을 잡아당긴다.
천천히 너는 좁은 헛간을 나온다.
파란 하늘에 하얀 달이 떴다.
잠 못 이룬 너를 따라
달도 잠들지 못했다.
거리엔 너와 닮은 사람들이 오갔다.
너는 죄가 없다.
2018. 12. 19
-jeongjongh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