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해서' '오늘도' '달립니다'

[冊:끔찍해서 오늘도 달립니다]

by JJ

책사인을 부탁하자 원윤식 작가는 ‘연습만큼 달리고 의지만큼 나아간다'라는 문장과 함께 책을 돌려줬다. 이후 저녁식사를 겸하며 세 시간 동안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나는 초보 마라토너이지만 달리면서 느낀 것들을 나눌 수 있었고, 그 시간에서만큼은 달리기 경력과 기록은 숫자에 그친다고 생각했다.


'끔찍해서'에 공감하니 '달립니다'는 당연했고 '오늘도'는 숙명이었다.


나는 '22년 초부터 달렸다. 현실은 시궁창 같고, 회사 일로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 시간이 이어지자, 술을 마셔도 스트레스는 해소되지 않았다. 더구나 앞으로 발생할 일들은 공포스러웠다.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때 마침 '21년을 잘 보냈다는 의미로 나에게 선물한 애플워치가 있었고, 친구의 권유도 있었다. 정신의 스트레스는 운동으로 풀어야 균형이 맞을 듯했다.


1km부터 시작해서 3km, 5km까지 달렸다. 불광천은 평평했지만 숨은 불규칙했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고르지 못한 숨과 덜덜거리는 다리가 나의 현실이기도 했다. 달리고 나니 '해냈다'는 안도가 아주 잠시 왔다. 그 안도가 길어져 '끔찍한 현실'로부터 더 오랜 시간 피해볼 수 있길 바랐다. 틈나는 대로, 날씨가 허락하는 대로 뛰었다. '22년 3월 코로나19로 비대면으로 열린 서울국제마라톤대회(동아마라톤)의 하프코스에 참여해 2시간 10분대로 완료했다. 완주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무엇을 하랴 심정으로 고통스러운 순간을 때웠다. 완주 소식을 알려주자, 자랑스럽다며 응원해 준 친구들의 메시지는 그 어느 때보다 든든했다.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속도는 비록 6분대에서 더 나아가진 못했지만 하루하루 쌓이는 거리가 괜찮았다. 달리면, '오늘도', '끔찍한 현실'을 버틸 힘을 얻었다. '오늘도' 달리지 않으면 오늘이 힘들었다.


달리기는 성경 속 만나(Manna)였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특별한 양식처럼 달리기는 정신적 만나였다. 광야 같은 같은 세상에서 정신의 굶주림에 불만과 불신만 키워갔던 시점에 다가왔으니 말이다. 달리기의 맛은 만나에 대한 묘사처럼 좋았다. 만나는 안식일 전날이 아닌 한 한 사람이 하루 분량만 거두어야 했다. 하루가 지난 만나는 먹을 수 없었다. 달리기 효과도 그랬다. 오늘 20km를 뛰었다고 해서 그 만족감이 내일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만나는 이른 아침에 거둬야 했다. 때를 놓치면 사라졌다. 달리기도 그렇다. 달릴 수 있는 시간을 그냥 보내고 나면, 다시 달리는 시간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주자들은 거리를 저축하려 하지 않으며 뛸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뛴다.


원 작가는 책 제목의 '오늘도'에 대해 "하루 뛰어 하루밖에 못 씁니다. 인생 못지않게 달생도 각박합니다. 애초에 하루 저축만 가능하게끔 생긴 터라 매일 달려야 합니다. 그날 일용할 양식은 그날 벌어야 합니다"라고 풀어냈다.


일용할 양식을 벌지 못하면(달리지 못하면) 우울해진다. 부상이라도 와서 몇 주를 쉬어야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사람이 되고 만다. 설령 대회라도 앞두고 있다면 온갖 자책은 다 하고 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세상일, 끔찍한 세상일을 떠올리며 머리 싸메는 것보다는 달리고 싶은 마음을 눌러야 하는 스트레스가 더 나을 듯하다.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해 뛰다 보면, 연습하다 보면 달리기는 느리지만 나아갈 것이다. 물론 달리는 게 매번 즐거운 건 아니다. 유쾌한 고통이 늘 함께한다는 건 잊지 말자.




1. 원 작가의 문체는 통통 튀며 운동을 즐기는 사람의 여유가 보이지만, 문장의 행간에는 삶의 무게와 일상의 고단함이 엿보인다.

2. 달리는 사람이 아니어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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