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보니 비로소 알게 된 것들 : 달리기는 감격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호주 시드니(Sydney)는 달리기였다. 하버브리지를 왕복하고, 오페라하우스를 돌며 발자국 도장을 찍었다. 발바닥이 닿는 만큼 시드니가 느껴질 거라 여겼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부터 국내외 어느 곳을 가든 러닝화를 챙기고, 그곳을 잠깐이라도 달려본다. 그래야 한다는 법칙이나 규정은 없지만, 러너라면 누구나 그렇게 한다.
2월의 시드니는 여름이지만 아침 기온은 18~20도였고, 바닷바람이 낮의 더위를 빠르게 날렸다. 알맞은 온도, 날씨에 시드니 항구를 좌우에 두고 달리는 시간은 감동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평일 아침에도 해안을 따라 사람들은 뛰었다. 피부색과 체형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다름'을 느낄 때 이국적이란 단어가 떠오르며 묘한 황홀감에 사로잡혔다. 시드니에서는 평소보다 좀 더 달렸고, 매일 뛰었다. 10km 뛰고 다음날 21.1km를 더했다. 안전한 타지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마저 더 해지니 달리기는 설렜다. 다만 여행자는 떠난 곳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하루 단위 시간을 의식해야 했다.
달리기는 벅차오르는 느낌만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몸이 따라줘야 한다. 마음과 몸의 괴리도가 커지고 있었다. 신호가 왔다. 오른쪽 다리, 오금 주변에 통증이 살짝 느껴졌다.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작은 사고들이 터진다. 하인리히법칙. 괜찮을 거라 애써 위로했지만, 기대를 비켜갔다.
마라톤은 신발 정도의 기구에 의지해 달리는 단순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정교하고 예민한 운동이라고 했다. 작은 변화에도 몸이 반응하고 알아챈다. 시드니의 오버런은 운동-휴식-운동의 순환고리에 금이 갔다. 시드니에서 돌아올 무렵 달리기는 멈췄다. 3월 서울국제마라톤을 한 달 남겼기에 부상이 뼈아팠다.
2월 말부터 대회 날까지는 불안과 초조로 가득했다. 그 감정을 다스리려 고작 2~3일 쉬고 다시 트랙에 올랐다. 다시 아팠다. 또 2~3일 쉬고 달렸다. 2주는 푹 쉬어야 한다는 조언을 애써 무시했다. 서울국제마라톤에서 Sub-4(4시간 이내 완주)를 하고 싶은 욕심, 지금 쉬면 완주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러닝화로 이어졌다.
결국 아픈 상태로, 5m 테이핑을 한 후 서울국제마라톤 전 구간(풀코스)을 완주했다. 무모했지만 더 뛰지 않아도 되는 지점은 통과했다. 대회 다음날, 3.20일부터는 걷기 어려울 만큼 아팠고, 출퇴근도 힘들었다. 그러다가 조금 좋아지길 반복했다. 조금 나아지자, 마라톤클럽 일요일 정기모임에 가서는 아픈 다리를 끌며 뛰었다. 다시 아팠다. 미련함은 고통과 괴로움을 키웠다.
4월 중순, 더 뛸 수 없는 상태이 이르렀다. 2주간 모든 형태의 운동을 쉬기로 했다. 병원에도 다시 갔다. 쉬어가는 것도 훈련이라고 선배들은 조언했다. 회복에 대한 확신은 없었기에 불안했고 불가피한 조언의 수용 상태를 유지했다. 그래도 2주만 지나면 다시 뛸 수 있길 기대하며 러너스클럽(이대점)에 방문해 족형을 검사하고, 신발을 새로 샀다. 다시 뛰는 날만을 기다렸다. 이렇게까지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고 있었다니...
2주가 지났다.
다리 상태를 확인해 보기로 하고 5월 7일, 6.16km를 빠르게 걸었다. 5월 10일 5.02km를 6:59/km 페이스로 뛰었다. "안 아팠다." 5월 13일 5.05km를 6:25/km 페이스로 뛰었다. "안 아팠다." 더 뛰진 않았다. 아플까 봐. 완전히 부상에서 회복했다고 자신하기도 어려우니까. 그래도 희망은 생겼다. 이제 다시 1km에 1,000원씩 적립할 수 있을 것 같고, 미세한 통증은 있지만 큰 통증이 없으니 감사했다. 앞으로 몇 주간, 멀리는 11월 JTBC 마라톤 대회까지 천천히, 차근차근 페이스와 거리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러너의 능력은 계속해서 달리는 데 있지 않다. 달리다 멈추는 게 힘이고, 순간의 기분에 휩쓸릴 때 그 감정을 다스리는 게 훈련이다. 운동-휴식으로 반복되는 사이클의 매 순간이 소중하고 중요하며, 사이클에 순응할 때 러너가 완성되는 듯하다. 두 달 넘게 제대로 못 뛰었으니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음도 있다. 깨달음에 손익계산서를 들이댈 순 없겠지만, 부상도 러너가 되는 과정이다. 잃었다고 하나 얻었고, 얻었다고 하나 잃었으니, 평균점에서 삶의 경로가 크게 벗어나진 않은 듯하다.
"뼈만 부러지지 않으면 괜찮아. 충분히 쉬면 좋아진다. 조급해하지 말고" 마라톤 클럽의 고문이신 80세 선배님의 조언이다. 수십 년을 달려왔다고 했다. 그렇게 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충분한 휴식과 적정한 강도에서 멈추는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