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유명한 맛집을 찾아 브런치를 즐기기도 하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어 먹을 기회도 있었고, 아주 가끔은 동네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을 즐기겠다고 오프까지 내고 신나게 놀고 오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야근이라는 개념은 없었으나, 투잡을 뛰는 날에는 저녁 10시가 훌쩍 넘어 집에 돌아와 다이닝 테이블에 놓인 내 몫의 저녁을 혼자 먹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출근 전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점점 무료해지는 시간을 맞이 했고 이를 깨기 위해서, 휴무일에는 가까운 '핀치'와 에그링턴' 을 번갈아 가면서 킬링타임을 보냈다.
혼자 놀기에 (어쩔 수 없이) 길들여지고 있는 나를, 조금이나마 밖으로 이끈 건 Sylvia였다.
실비아는 지난 봉사활동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필리핀계 캐나다인이었다. 홈스테이 가족들도 그렇고, Second cup세컨드 컵의 Edmel도 그렇고, 나는 유독 필리핀 친구들과 인연이 많았다.
한국 드라마, 한국 음악, 한국 영화를 좋아하던 실비아는 나와 만나기 전에는 꼭 '안녕하세요, ' '감사합니다' '오늘은 기분 어때요?' 같은 기본적인 문장을 한두 개씩은 준비해왔고, 한국음식도 참 좋아해서 쉬는 날에는 종종 만나 함께 핀치역 근처의 한식당들을 마치 도장 깨듯이 옮겨 다니며 김치전, 갈비탕, 된장찌개들을 맛보며 한국음식은 전반적으로 맵고 정갈한 음식들이 많다느니, 하는 평가를 서로 주고받곤 했다.
또, 한 번은 김치전에 뭔가 큰 감명을 받았는지 몇 날 며칠을 유튜브 레시피를 찾아보며 연구를 해오더니, 어느 날 집으로 초대해서는 김치전 케이크(정확히는 김치전 6장을 쌓아놓은, 흡사 케이크의 모양을 흉내 내듯)를 손수 만들어 대접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실비아의 친구들을 한두 명씩 소개받고, 또 그 친구들의 친구들을 소개받아 알게 된 친구들과 PUB에서 맥주를 마시고 필업이 된 상태로 다운타운 클럽에서 노는 날들이 많아졌다.
한동안은 정말 너무너무 신났다.
내가 꿈에 그려왔던 외국에 나와있고 현지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정말 여기서 좀 만 더 신나고 재밌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렇게 에너지 소모적으로 술을 마시거나 야간에 놀다 보니 생각보다 나는 정서적으로 빨리 지치기 시작했고 술에 업된 상태에서 클럽의 EDM 음악 속 신남에 의지하다 보니 다음날 눈뜨면 정말 많이 공허하거나 현타를 느끼곤 했다.
다시 잡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적한 빅토리아가 싫다고 사람 많은 토론토로 와놓고는 정작 화려하면서도 시끄러운 지금의 환경에 질려하고 있는 꼴이라니. 그간의 숙취와 , 돈 소비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혼자 고군분투했지만 미칠 것 같은 공허함을 깨는 것은 불가능해져 갔고 토론토처럼 큰 도시에서 좋아하는 취미도 딱히 없던 나는 서서히 토론토가 시끄럽게만 느껴졌다. (차라리 그때 브런치나 블로그 글이라도 열심히 썼었더라면...ㅎ)
내가 상상했던 '해외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외국에서 일도 하고 이따금씩 여행도 다니고
화려한 도시생활을 즐기기도 하는데
무언가 나의 '삶'이 점점 공허해져 갔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확실 무언가 내 마음속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이루었더니 이제 나의 감정은 정점을 찍고 서서히 아래로 향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다. 서서히 나도 모르게 새로운 니즈를 찾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바라 왔던 이것들이 더 이상 내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걸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좋았다가 싫었다가 싱숭생숭한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