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제시 Oct 27. 2022

나는 왜 오늘도 떠날 궁리를 하고 있을까?




처음 이곳에 올 때 다짐한 건 '딱 1년만 버텨보자'였다.


비자의 특성상 머물 수 있는 최장 기간이 1년이었고, 그래서 그 기간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오는 것인데, 다들 처음에 올 때는 6개월간 죽은 듯이 일하고 돈을 많이 모은 후에 그 돈을 여행을 다니거나 영어공부를 한다거나 등 하고 싶은 것들을 하리라는 비장한 각오를 품고 온다. 





그러나 막상 캐나다에 도착하면 상상과는 많이 다른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여행도 다니고, 영어도 공부하겠다는 목표들이 꽤나 험난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견뎌'가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도 그만큼 익숙해져가는구나 싶다가도, 다시 힘들어지는 시간들이 자잘하게 발생하고, 힘들었다 하면 익숙해지고, 다시 또 힘들어지기를 반복했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건,


나는 짓밟으려 할수록 더 머리를 쳐드는 잡초 같은 사람이었다.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그 당일에는 억울에서 눈물이 나고 속 터져해도, 그다음 날이면 그 오기를 통해 더더욱 불타올랐으니까.. 그 과정에서는 나는 점점 덤덤해지고 더 강인해질 수 있었다. 자기 확신도 생겼고.

외롭고 일도 사람도 힘들었던 초반 적응기를 지나고 나니 정말로 평화가 찾아왔다. 마음이 편해지자 점점 내 성격을 되찾아갔고, 경험치까지 쌓은 워홀러가 되어가고 있었다. 적대적으로만 보였던 진상 손님들도 점점 대하기 쉬워졌다. 외로웠던 이방인에서 일 끝나고 잠깐 만나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들도 생기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투잡을 뛰어도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지내던 중 어느 날 보스 Martin이 날 불러서 내 계획을 물었다. 

워홀이라는 유효기간이 끝나면 뭐할 거냐는, 물음. 별생각 없이 아마도 돌아가자마자 바로 취업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답하자, 그는 꽤 진지한 얼굴로 '그냥 그렇게 바로 돌아가겠다고?'라고 되물었다.



“여기 캐나다만 해도 정말 예쁘고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아. 

캠핑하면서 자유롭게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고, 너 아직 젊은데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1년 내내 일만 하다가 돌아간다면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 난 네가 처음 캐나다에 오기 전에 원했던 건 분명 이런 게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


- 이 말을 들은 나는 보스의 말이 좀 과하다고 생각했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나도 나름대로 당일치기나 2,3일 단기 여행도 종종 갔었고, 일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결국 영어를 써먹고 외국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으로서의 의미가 더 컸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는데?라고 소심하게 반박해보지만, 보스의 말이 맞았다. 나는 분명 떠나기 전에 이곳저곳 여행도 하고 경험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사실 그동안의 캐나다에서의 삶은 홀리데이보다는 워킹이 주가 되었으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고 찾아온 나라에서 또다시 익숙함에 길들여진 나를 발견했다. 처음의 계획은 점차 희미해졌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현재에 안주하려고 했던 것이다.





한 번 마음에서 불씨가 일자 더 이상 이렇게 끝이 오기만을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또 급발진하여 언제까지 일하고 그만두겠다고 노티스를 주고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드라바 도깨비를 생각하며 캐나다 동부 여행으로 토론토에서 퀘벡, 몬트리올, 그리고 옆 나라 미국 뉴욕까지도 찍어볼까였는데... 여차하다가 엘에이로 이민 간 고등학교 동창과 연락이 닿아,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친구도 만나고 가자!로 생각보다 훨씬 더 여행지의 거리감이 멀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동에 있어서 감이 안 잡혀서, 어쩌지 고민하던 차에 미대륙 여행을 중심적으로 배낭여행하는 여행객들을 모집해 같이 캠핑하고, 투어를 즐기는 다국적 여행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결국 스케일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사실 이것도 결정하기까지 엄청난 고뇌와 걱정이 있었다.


생판 모르는 외국인들과,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행을 같이??? 재밌을까? 힘들까? 소통이 잘 되긴 할까? 미국 지리에 빠삭한 투어 리더가 있다고는 하나, 괜히 갔다가 어디선가 총 맞아서 객사할까 봐 무서웠다. (그렇다. 나는 너무 미드에 길들여져 있었다.) 

많은 걱정과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일단 저지르기로... 결정...ㅋㅋㅋ

이전 27화 썸머타임 시작, 나의 봄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