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때의 일이다. 한 친구에게 맨밥에 우유를 부어 먹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상상만으로도 부조화스러운 조합 같아서 연신 "진짜, 진짜?" 반복 확인하며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음식의 세계는 참 놀랍기도 하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재료들에 불이 매개체가 되어 열이 가해지고, 약간의 가공으로 원재료의 형태가 바뀌기만 하면 식당에서 큰 그릇에 새 모이만 한 적은 양이 담겨 나와도 묘하게 지불 비용은 양에 반비례하게 되며, 고객은 더욱 귀한 대접을 받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마법의 세계가 열리게 된다. 불이 쐬여지고 여기에 소금, 양파, 파슬리와 같은 자연의 산물들이 어우러지면 우리는 밥 한 공기에 200ml짜리 우유를 구입하고도 남을 비용을 흔쾌히 지불하며 맛있다를 외치며 만족감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쌀알이 씹힐 정도의 형태로 남겨놓고 끓여 우유와 만나면 리조또, 쌀알을 형태 없이 갈아지도록 끓여 우유를 부으면 장수하신 영조가 즐겨 드셨다는 타락죽, 쌀을 쪄서 서로 엉겨 붙도록 치댄 후 끓여 우유와 만나면 나름 먹을 만 해지는 크림 떡볶이가 되는 놀라운 음식의 세계.
불을 어느 시점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세기로 투입해야 하는지, 또 음식의 재료들끼리 섞이는 시점이 언제인지에 따라 맨밥과 찬 우유의 만남처럼 매장에는 존재하지 않고 소수의 마니아층을 통해 찾아지는 음식이 될 수도, 혹은 어떤 요리사를 식당가의 장인으로 탄생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이 열의 제공 방법과 재료의 가공 방식에 의해 음식점마다 평점이 천차만별이 되는 것은 결국 작지만 결정적인 한 끗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라면을 끓일 때도 라면의 굵기, 길이, 밀가루의 탄성도에 따라 가장 맛있게 조리되는 가열시간이 따로 안내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내 인생에서 부여받은 재료들을 가장 가치 있고 나답게 완성시킬 수 있는 사용법을 알고 있는 걸까!
내가 만들어내고 싶은 요리는 가령 이런 것이다.
먼저, 배움과 단련이라는 열에 내가 가진 단단한 형태를 녹여내어 내가 정한 한계, 아집, 두려움, 선입견 등을 조금씩 내려놓는 것.
다음으로는 나를 완성시켜 나가는데 필요한 지루하면서도 기대감을 놓을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잘 이겨내는 것.
그리고 마침내 따끈따끈하게 나를 덥히려 마중 나온 순수한 하얀색의 우유를 만나 너무 딱딱한 고체도 아니고, 흐물흐물 액체도 아니지만 결국 둘 다이기도 한 그런 크림 리조또를 만들어낸다면 좋을 것이다.
쌀과 우유의 조화야말로 정통의 식물성과 동물성의 재료가 만나 이룬 깔끔한 조합일 것이며, 거기에 버섯의 숲내음과 새우의 바다향이 더해지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아마 내가 단단한 쌀이었다가 몽글몽글하게 끓여져 음식에 적당한 형태로 바뀌었다면 그건 학창시절에 삼형제 위해 새벽마다 고단한 몸을 일으켜 도시락을 싸주시던 엄마의 헌신의 시간들이 내게 불이 되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나를 녹여내 온 것이리라. 그런 노고의 시간들이 당연했던 시절의 이야기는 요즘 아이들에게 "진짜, 진짜?"를 연발하게 할 만한 것임이 틀림없다. 나는 그 뭉근한 불을 받으며 그 안에서 익어가고 완성되어 왔다.
뜸을 필요로 하는 요리처럼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들을 거쳐 이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쓰일 차례이다. 그것이 크림 리조또의 존재 이유이다. 그 최적의 레시피를 알기 위해 나는 오늘도 문장을 짓고, 그것들을 이어가며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