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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찌니 Dec 09. 2023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 힘든 이유는

적절한 도구를 찾아야 해

흐렸다 갰다 날씨 같은 거야
필요한 건 날씨를 대비한 도구가 있음 돼


시작되었다.

꾸물꾸물한 먹구름이 몰려오면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우산을 챙긴다. 장마철이 되면 으레 가방엔 언제 올지 모르는 비에 대비해 우산을 하나씩 챙겨 다닌다.

그때 할 고민은 그저 장우산을 챙길 것인가, 삼단 우산을 챙길 것인가 정도이다.

그런데 장마철이 아닌 맑은 날에 갑자기 비 예보를 들으면 우산을 챙겨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당히 고민을 하게 된다. 비 온다고 챙겨 들고나갔다가 맑은 날씨에 잊어버리고 온 우산이 한두 개가 아니기에 매번 또 잃어버릴 까봐 챙겨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시간에 안 잃어버리게 잘 챙길 생각을 하면 될 것을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거다.

비가 오면 쓰면 되고, 안 오면 가방에 바로 넣어두던지, 장우산이면 가방옆에 꽂아두던지 하는 식으로 잊지 않고 챙겨 오면 될 일이다. 그런데 미리 걱정한다. 잃어버릴 까봐 걱정돼서 비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상황을 상상하며 쓸데없는 시간을 소비한다. 그 마음은 사실 '들고 가기 싫음'을 돌려 돌려 말하는 것일 테고 그럼 그냥 까짓 비 한번 맞으면 될 일이다. 그건 그 나름대로 싫고 저건 저 나름대로 싫다 보니 그저 싫은 것에 포커스를 맞춰 고민할 거리도 아닌 것을 고민하게 된다.


하기 싫다... 습관적으로 한 번씩 불쑥 올라오는 마음이 있다.

뭐가 하기 싫은데라고 따져 물으면 또 대답은 못한다. 하나하나 따져 물으면 하기 싫지 않고 오히려 '잘하고 싶다'에 더 가까운 그런 마음이 자꾸만 흐린 날씨 예보처럼 쓸데없는 생각을 중요한 고민인양 불필요한 시간을 쓰게 한다. 그런 마음이 자꾸 쌓이다 보면 난 왜 이럴까, 점점 깊은 감정의 골로 파고 들어가곤 하는데 이런 경우 너무 깊이 들어가서 가끔 다시 올라오는데 적잖이 많은 시간이 들곤 한다. 간혹 그 과정에 마음과 몸이 많이 상하는 경우도 있는데 흔히 '우울'이라는 말로 그 감정들을 묶어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우울이라고 말하는 감정 속에 정말 다양한 감정들이 들어 있었다. 오히려 반대의 감정이 다른 요소들과 부딪히며 전혀 다른 감정처럼 표현되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그런 일들이 반복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장을 꺼내 입는다


'날씨가 흐렸다 갰다 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잖아, 그럴 때는 우산을 챙길지 말지만 결정하면 돼.

지금 내 맘도 그런 거야. 영원히 가는 감정이 아닐 건데 왜 고민해 일단은 이 감정에서 벗어날 우산을 챙기자. '

날씨를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할 수 없는 일은 그대로 흘러가게 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극복 방안을 찾는 거지.  그게 '우산'이 필요한 이유 아니겠어?  

지금은 장비착장이 필요한 시간, 컨퍼런스 복장을 착장하고 집을 나선다.


얼마 전에 엘리멘탈이라는 영화를 봤다. 각 요소들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이 꽤나 신선하고 재밌었다. 예전에 이런 비슷한 영화를 봤던 것 같은데 인간의 감정요소들을 영화한 것이었는데 제목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무튼 감정이라는 복잡한 것을 따로 또 같이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참 재밌구나 싶어 가끔 내 감정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가 있다. 그러다 가끔 격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난 나름 나를 돌봐준답시고 이전에는 ' 많이 지쳤나?'라고 걱정했다 '너무 게을러졌나?' 하며 반성하기도 하며 스스로를 끌어올리려 무던히 독려했다.  그러다 문득 이것도 습관일 수 있겠구나. 큰 의미 없는 것에 긴 시간을 들여 의미를 부여하고 힘과 시간을 쏟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본 나의 감정은 습관적인 거짓 감정이었다.

무기력이라는 습관성 거짓핑계가 점점 일을 하는데 지루함을 느끼려 하는 마음에 타당성을 부여하며 힘을 실어주려 한다.


내 안에 아주 오래된 나쁜 친구들을 난 아주 거만하게 항상 안고 갈 수 있을 거라 착각하며 공존할 수 없는 여러 요소들을 함께   했다. 오늘도 고민하고 내일도 고민하고 늘 고민하는 고민'만'하는 고미니, 세상만사 모든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다 그럴 수 있다고 '무조건' 이해해 버리는  긍정이, 매사 부정적으로 왜 그런지 이유를 대라고 따져대는  타당이, 그러든지 말든지 관심밖의 일이라는 무과니, 이런 아이들을 늘 케어하고 돌보며 중간에서 혼자 끙끙 고민하며 모든 감정들에 동요하고 힘들어하는 공가미.

예전에는 버러기(화)덜덜이(두려움)도 함께 어울렸지만 요새는 조금 컸다고 둘은 어린 다른 요소들과 함께 두고 다섯 명이 늘 번갈아가며 많은 시간 나를 지배한다.

누군가의 상상은 이렇게 현실에 존재하며 타인을 위로하네

일을 시작할 때 고미니는 늘 시작을 유예시키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수만 가지를 찾아오는데 그 옆엔 늘 타당이와 공가미가 따라다녔다. 고미니가 들고 오는 이유들에 타당이는 부정적인 결과들이 예상되는 상황들을 가져다 대며  안된다를 외쳐댄다. 


가끔 이런 영화들을 만날 때면 나의 상상이 누군가의 상상과 만나면서 알 수 없는 내적 친밀감을 느낀다.

혼자 스스로의 감정을 타인이 보듯 3인칭의 시점으로 보는 놀이를 해본다. 그리곤 그럴 수 있다 그냥 넘겨본다.

어차피 흘러가는 감정인 것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가볍게 넘어가라 응원해 본다.


그런 상황들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그들만의 시그널이 생긴다. 오늘은 운동을 해봐야겠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오늘의 감정 날씨는 어느새 기분 좋은 가을비로 바뀐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소리도 기분 좋게 토닥토닥, 가볍게 마음이 위안되는 토닥토닥.


어느새 감정날씨는 비 온 뒤의 무지개가 펼쳐진 촉촉한 기분 좋음이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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