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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찌니 Dec 23. 2023

가스라이팅의 앞과 뒤

목에 걸까 코에 걸까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만연해진 요즘 가끔 이게 가스라이팅이라고?싶은 순간이 있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어느 시점에 모든 말이 가스라이팅처럼 들렸던 적도 있었다.

그랬던 때가 있었다.


2021년 겨울, 날씨탓인지 나빠진 컨디션 탓인지 모르지만 유달리 날선 추위에 꽤나 힘들었다. 갑자기 바뀐 회사규모와 사업내용에 겨우겨우 숨만쉬며 허덕이던 중 코로나사태까지 만나 다시 그나마 해오던 것도 다 엎어야 할 판이었다.

팀장이라 입으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나날이 말라가는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역대급 몸무게를 찍으며 리즈를 갱신하는 기이한 경험도 하고 나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지나고 보면 다 정말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라는 말이 나온다. 기억이  변하는 거다.


"내가 널 안아끼면 이런말도 안해~!"

"니가 더 성장했음 좋겠어, 지금 그상태로는 도움이 안돼!"

"너한테 애정이 없음 화도 안나"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잖아"

아니꼽게 생각하면 끝도없는 생각들, 그때는 저말들이  이렇게 들렸다.


"너 혼자는 아무것도 아냐, 네까짓게 뭘안다고! 니가 실수를 싸질러대니까 내가 수습하는거 아냐, 니가 부족하니까 이모양이지!!"

온갖 나를 갉아먹는 말들이 내 안에 파고들었다.

눈은 더욱 생기를 잃어갔고 창의성은 점점 사라져갔다.


오색찬란했던 세상은 점점 약간의 베리에이션만이 남은 회색도시가 되었다. 더 짙은 회색 덜 진한 회색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세상은 잔소리와 쓴소리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그 때는 그랬다. 그리고 이 모든 이유가 나를 향한 매섭고 뾰족한 공격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날 아침 5시에 눈을 떴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였다.

그로부터 일년, 더이상 세상의 쓴소리가 괴롭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같은 말이 잔소리가 아닌 응원의 말로 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사람도 아팠구나.'


일년이었다.

속삭임과 함께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 들리는 말속에 긍정적인 의미를 찾기 시작한지 딱 일년.

더이상 사람들속에서 손이 떨리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눈을 보는 것이 가끔 힘들기는 했지만 속절없이  떨리던  목소리는 더이상 염소마냥 떨리지 않았다.


그것부터 시작이었다.

매일 아침 잘했다고 더 잘할 수 있을거라며 새로운 도전을 하나씩  늘여갔다. 사람들 속에 던져두고 부딪히며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려 듣고 또 들었다. 욱하는 마음이 들때면 안보면 그만이지, 감정소모를 하지말자 싶어 왜 화가났을까를 찬찬히 생각해보곤했다.

그럴때면 으레 답은 내면에 숨겨뒀던 부끄러운 부분이 들켰거나 부족함이 드러났을때 되려 화를 내곤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나와같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나만큼 아프구나.

그날부터 나의 가스라이팅은 시작되었다.

당근도 주고 회유도 하고 가끔은 협박도하며 후회를 해도 결과에서 당연히 받아들일수 밖에 없도록 최대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부딪혔다.

조금씩 덜아프다 싶었을 때 한가지 알게 된건, 그렇게 내 살을 후벼파던 칼날과도 같았던 말들을 스스로에게 해대고 있었다는 것.

스스로에게 한없이 냉정하고도 뜨겁게 가스라이팅을 해댔다.


가스라이팅의 목적지가 달라졌을 뿐 방법도 온도도 그대로 였다. 하지만 달라진 방향성으로 인해 가스라이팅은 '독려'혹은 '동기부여'가 되어 달려나갈 이유가, 동력이 되었다.


그로부터 어느새 또 일년이 흘렀다.

가끔 궁금하다. 이제는 면역이  생겨 가스라이팅이 잘 먹히지 않을때도 종종 생겼다. 만약 그때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난 뛰쳐나왔을까?

만약 그 후에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하지않았다면, 지금 느끼는 안정감과 견고함을 배울 수 있었을까?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헛된 것이 없었다.

아픔도 지나고나니 추억이 되고 그 속에 숨은 이야기들이 다른 옷을 입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써내려간다.

지금의 이 생각도,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스담스담 잘했다 칭찬해 줄 시간이 될 수도 혹은 왜 그랬을까 손발오그라드는 이불킥을 하는 순간  중 하나로 남을지 모를일이다.


다만 지금  순간의 결과는 수많은 선택을 해야만 했었던 지난 순간순간들이 만들어 낸 것임은 틀림없다.

누군가에는 치떨리고 살이 시린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도 누군가에게 변곡점을 견뎌내는 힘과 에너지가 된 것은 사실이니까. 인생은 정답은 없다.

다만 그 순간에 그 사람에게 최선의 답이 있을 뿐.

모든것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존재한다. 이겨낼 자신이 없으면 달리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내게 독이 되는 것인지 득이되는 것인지는 가릴 수 있는 변별력이 필요하겠지.

나이를 먹는다고 무조건 현명해지면  좋겠지만 동시에 나쁜것도 함께 배웠기에 어리석음도 같이 자란다.

모두에게 절대적일 순 없지만 오로지 본인에게는 절대적이고도 강력할 수있는 가스라이팅 방법을 하나쯤 만들어 두는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수만번 외칠 수 있는 무한동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오늘도 난 내게 맞는 새로운 가스라이팅 방법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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