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조 Feb 12. 2022

시험관 시술하는 내 또래 여자들을 봤다

임신 계획 없는 가임 여성이지만,

어젯밤 잠들기 전, 가끔 보던 일상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보게 됐다. 30분이 넘는 영상에는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게 됐다"며 매일 세 번씩 약을 먹고, 난자 채취 전까지 매일 배에 직접 자가 주사를 놓는 과정이 담겼다. 난임 병원에 다니고 주사약에 지쳤으면서도 영상의 재미를 걱정하는 모습에 내 가족도 아닌데 마음이 쓰였다.

"제가 임신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거예요."

오늘 눈 뜨자마자, 유튜브에 '시험관'을 검색했다. 식단, 영양제, 운동 등 시험관 성공 노하우를 공유하는 영상부터 성공과 실패를 고스란히 담은 영상이 가득 나왔다. 시험관 6차까지 실패했다는 여성 유튜버가 수십 개의 주사기를 앞에 두고 찍은 영상은 10개월 만에 60만 명이 넘게 봤다. 자신이 임신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올해의 내 나이와 같은 서른이었다.(그 뒤 영상을 보니 7차에 성공해 출산을 준비하고 계셨다.)

서른에도 결혼에 대한 계획과 아이에 대한 로망 없이 산다. 저 너머에는 임신에 좋다는 두유와 영양제를 챙겨 먹고 배에 주사를 놓고 난자의 질에 웃고 웃는 내 또래 친구들의 세상이 있다. 요즘 많이 보이는 '임밍아웃(임신 깜짝 공개)' 영상들의 비하인드더씬에는 난자를 채취하고 이식하는 과정을 반복한 예비 엄마들이 있다. 댓글들을 읽어 내리다 내 재생산력과 커리어 패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시절이 떠오르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서른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지만 아이를 낳을 서른 여자는 난임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체감된 것이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결혼식 다녀오니 30대 신부는 안 예쁘더라" "30대에는 주위 괜찮은 남자는 이미 다 결혼해 있거나 어린 여자와 결혼한다" "노산과 난임과 시험관 시술, 늙은 엄마" "김용건 봐라, 70살까지 남자 정자는 괜찮지만 여자는 안 된다"

여자 나이와 결혼, 출산에 대해서 이 소리 저 소리를 듣고 자라며, 자궁의 유효기간에 대해 누구에게 말은 못 해도 조급함을 느꼈다. 비혼에 출산 계획도 없지만, 난임치료로 고생하는 또래 친구들의 사정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학생 때부터 매달 생리 한 게 아까워서라도 애는 낳아봐야지!"라며 언젠가 엄마가 되리라 생각했다. '노산이면 장애 확률이 높아진다니까 낳을 거면 일찍 낳아야지.' '아이에게 안정된 애착을 주기 위해서는 3년은 엄마가 키워야지.'라고도 생각했다.

p.28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선을 넘는지 새삼 놀라웠다. 당신은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만큼 가깝지 않아요, 하고 대답하고 싶은 걸 매번 참았다. 사실 아무도, 가족도 그만큼 가깝지 않다고 여겨왔다. 여자는 타고난 개인주의자였다. 그런 여자에겐 일가친척들이 덕담이랍시고 명절마다 하는 말들이 징그럽게만 느껴졌다. 왜 다른 사람의 생식과 생식기에 대해 그렇게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기이할 정도였다. -정세랑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中

그런 마음이 바뀐 것은 여자치고 늦은 나이인 스물다섯, 제로베이스에서 기자 준비를 시작하면서 였다. 아이를 낳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여자 삶의 시계가 자궁의 나이와 재생산력에 차르륵 맞춰진다. 내 이상처럼 젊은 엄마가 돼 내 아기에게 오래 붙어 있기 위해서는, 취업 직후 만나는 남자와 결혼 준비를 해서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길게 써야 한다. 가임여성으로 막연히 그려오던 임출육은 내가 명확히 준비하던 커리어 계획과 아귀가 맞지 않았다.


결혼을 했으니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비혼 출산한 사유리처럼 '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낳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2020년 기준 서울에 사는 여성 28.1%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대학 때 글쓰기 수업을 하던 교수님은 "자식을 낳고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 한 새로운 차원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라고 하셨다. 아이를 키우는 여자 선배들은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대해 더 넓은 시각을 갖게 되고 기자로서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도 하신다. 아이란 뭘까. 가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내 배로 낳은 자식이란 부모에게 어떤 존재일까'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너 페미지?"와 커리어우먼 사이, 숏컷 1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