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끝내며 : 카메라를 내려놓고

[우리가 머무른 순간들] 09. 닫는 글

by 진군


닫는 글 : 카메라를 내려놓고





제가 이 자리에 연재해온 글들은 어쩌면, 사진이 아닌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지 않아서, 어떤 사진들은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지우기도 하고, 보는 이의 상상으로 그 간극을 메워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진을 볼 때마다 그 안에서 카메라의 존재를 최대한 찾아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사진들은 폐쇄회로(CCTV) 화면이 아니기에, 카메라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자주 생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결과물보다는 그 과정과 태도에 대해, 렌즈의 바깥-카메라의 뒷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써보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카메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 무엇을 할 수 없는가. 카메라는 우리의 삶을, 시간을, 사건을 어떻게 더 풍부하고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주는가. 그런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또 써보려 했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는 첫 글을 읽고 친구 B는 제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B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사진 동호회에서 활동하실 정도로 카메라와 사진을 좋아하는 분이셨는데, 어느 날부턴가 카메라를 조금씩 처분하시더니 얼마 전에는 하나 남은 카메라를 B에게 물려 주셨다고 하더군요. 당신이 사진을 그만두시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고민해보던 B가 내린 결론은, 다니시던 회사가 먼지같이 사라진 다음부터 사진을 멀리하신 것 같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사진’에 흥미를 잃은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동안 저는 카메라를 ‘들게' 되는 순간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요컨대 작가는 무엇에 마음을 두고 거리를 걸었는가, 어떤 순간을 사진으로 간직할 것인가, 무엇을 기록하고 표현할 것인가, 와 같은 질문들 말입니다. 그러나 B의 말은, 한 사람이 카메라를 ‘내려놓게' 되는 순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간 나를 설레게 해오던 것들이 더이상 나를 들뜨게 만들지 못하는 날, 타인과 세상을 향하던 마음을 거두고 카메라를 내려놓게 되는 순간 말입니다. 온 열정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다가들지 않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할 테지요.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런 순간이야말로 또 한없이 인간적인 순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참 복잡하고 오묘한 족속들이라서,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만지고 기록하고 싶어하다가도 때로는, 부담스럽지 않게 멀리 두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어떤 날에는, 무엇도 마음을 움직일 만큼 아름답다 느끼지 못할 때도 있겠지요. 그 모든 기분이 인간적이기에, (조금은 주제넘게도) 카메라를 내려놓기로 한 당신의 결정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한 것입니다.


제게도 한동안 카메라를 들지 않는 날이 많았습니다. 사실 그 기간이 꽤 길어서, 누군가에게 사진을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카메라를 피해온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즈음 쓴 글을 돌아보면 저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다가도 자주 멈췄고 또 꾸준히 두리번거렸다. 여행을 할 때마다 나는 혹시 놓치는 것이 있을까봐, 지금을 충분히 기억해두지 못할까봐 오히려 조바심이 나곤 했다. (…) 어쩌면 내 사진들은 조바심의 기록들인지도 모른다. 다음 여행에는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 삶의 멋진 순간에 집중하는 데 카메라는 방해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주인공 월터는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아이슬란드에서 전설적인 사진작가 숀 오코넬과 함께 기다리던 표범을 만나지만, 숀은 셔터를 누르지 않습니다. 월터가 언제 찍을 거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가끔은 안 찍을 때도 있어. 정말 멋진 순간에... 나를 위해서.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저 이 순간에 머물 뿐이야." 영화의 명장면으로 자주 회자되는 대사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동시에 오해될 여지가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이 전하려는 메세지가 "소중한 순간엔 카메라 따윈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카메라가 있느냐 없느냐, 셔터를 누르느냐 누르지 않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테지요. 우리는 진정한 마음으로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느끼고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를'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남은 질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에 '존재'하지만, 우리 모두가 지금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어제와 내일에 얽매여 오늘을 충분히 살지 못하곤 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카메라는 지금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인 것은 아닐까요. 한 장의 사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대상을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바라본다는 말은 대상에게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은 피사체에 대한 연민일 수도, 진실을 향한 열망일 수도,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감탄일 수도 있습니다. 사진이 기록하는 것은 오로지 한 조각의 현재일 뿐이기에, 그 발견을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만 합니다. 아름다운 사진을 얻고 싶다면, 먼저 우리의 수많은 현재들 중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야만 합니다. 그 장면을 찾아가거나 기다리거나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진의 기술보다는 삶의 태도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내고 기다리고 만들어내려는' 그 모든 노력들이 우리를 오늘에 살아있을 수 있게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가끔 선물처럼 좋은 사진을 만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쁜 일이겠지만,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기억일 것입니다. 멋진 사진이 아니라 그 장면을, 풍경을, 표정을 만나던 순간의 두근거림일 것입니다. 그럴 때 카메라는 사진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만남을 위해서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 속에는, 언제까지나 카메라를 한 켠에 두고 살아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카메라를 내려놓더라도 카메라를 든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우리가 머물렀고 또 머무르게 될 그 '코닥 모먼트'들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한강변의 노을, Canon 70D / @jjinkuunn



[우리가 머무른 순간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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