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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군 Jan 08. 2022

이모네를 기억하시나요?

*2021 병영문학상 수필부분 가작 수상작

*2021 병영문학상 수필부분 가작 수상작 




이모네를 기억하시나요?


이모네가 사라졌다.


'이모네'는 싸고 맛있는 안주와 정겨운 분위기를 자랑하는 작은 술집이었다. 문 닫는 날도 없이 매번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했고 갈 때마다 예쁜 강아지 복실이가 항상 손님을 반겼다. 네 테이블 남짓한 작은 공간엔 매일 누군가가 찾아왔고 또 쉬어갔다. 희미한 희망과 뚜렷한 불행을 안주 삼아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렇게 이모네는 대학교 후문 맞은편에서 십수년간 주변 자취생과 주민들의 새벽을 책임져왔다. 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는 친구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공간이 있다. 이모네는 우리에게 그런 술집이었다.


그런 이모네가 지난 겨울 사라졌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주인 이모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가게를 닫게 되었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나이를 속이고 몰래 술을 먹다가 적발되어 그 여파로 문을 닫게 되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이모네는 이렇다 할 작별인사도 없이, 아쉬움을 가다듬으며 마지막으로 잔 한 번 부딪힐 여유도 없이,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반경 500미터 이내의 모든 슬픔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불이 꺼지지 않을 것 같던 이모네의 간판이, 꺼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이모네를 찾는 시간은 모두가 하루를 정리하는 새벽이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미처 하루를 끝내지 못한 사람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곳. 하루치의 아픔과 슬픔을 쏟아내고 일인분의 위로와 에너지를 돌려받는 곳. 언제부턴가 이모네를 찾는 이들은 하나둘씩 벽에 낙서를 남기기 시작했다. 아마 시작은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잔뜩 취한 그는 이 밤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나 보다. 내세울 것 없는 이력서 같은 자신의 삶에 한 줄의 문장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청춘이 매일 조금씩 사라져 간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의 작은 행동은 이후 이모네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로 이어졌다. 수많은 낙서들이 가게 안에 새로운 이야기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빈 자리에 흙이 덮이고 꽃이 자라듯 그 낙서들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 사이에서 다시 쓰이고 발견되기를 반복했다. 그 때의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로는 모자라서 그 고백을 선언하듯 벽에 적었고, 1차로 고깃집, 2차로 노래방을 가고도 이렇게 헤어지기에는 아쉬워서 자꾸만 이모네로 향했다.


스무 살의 3월, 이모네에서 처음 술을 마시던 날을 기억한다. 메뉴판에 적힌 저렴한 안주들과 손님이 알아서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 마시는 여유로움보다 인상깊었던 건 모든 벽을 빼곡히 채운 낙서들이었다. 연인의 귀여운 사랑약속과 동아리 부원들의 우정의 다짐, 얼핏 보면 시집의 한 구절 같기도 한 넋두리들이 순서도 없이 뒤엉켜 있었다. 멀리서 보면 술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낙서장 같아 보였을 지도 모른다. 나는 부치지 못한 편지 같은 그 낙서들을 읽어보면서 서울살이에 처음 정을 붙이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스무살 언저리의 나는 항상 위태롭고 불안했다. 밤엔 춥고 낮엔 더운 옥탑방에 살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주방보조 아르바이트에 다녔다. 그 즈음의 나는 목구멍 밑에 뭐가 걸려 있는 것 같은 헛헛함 때문에 이따금씩 가슴이 답답했다. 소리라도 실컷 지르고 싶었고 술을 진탕 퍼마시고 정신줄을 놔버리고도 싶었고 차라리 누구랑 붙어보고도 싶었다. 열아홉 살은 지나버렸고 스무 살은 아직 되지 못했고 스물 한 살은 되기 싫었다. 청춘은 아름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 것이라지만 지긋지긋한 기분까지 위로할 수는 없었다. 퇴근길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널 때마다 나는 뭐가 그렇게도 서러웠을까?


그럴 때마다 이모네는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 혼자 사는 방이 너무 조용해서 눈물이 날 때, 따뜻한 국물이 필요할 때, 이모네는 항상 불이 켜져 있었다.


내가 이모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안주는 짜짜로니와 계란탕이었다. 닭껍질볶음을 처음 먹어본 것도 이모네에서였다. 막차 시간과 지갑 사정을 걱정하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모네는 항상 최적의 선택지였다. 고작 소주 한 병에 조금 기분이 좋아져서는 오래 가지 못할 다짐 따위를 손에 쥐고 문을 나서게 되는 곳. 그래도 어딘가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성취감과 안도감을 찾아내는 곳.


이모네 간판 대신 컵밥집의 간판이 올라간 모습을 발견하고 나서야 나는 이모네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었다.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더 이상 이모네에선 어떤 낙서도 어떤 이야기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사라졌으니 더 이상 사라질 일도 사라진 것이다. 한 시절이 완전히 끝나버렸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슬펐다.


그 날 밤, 나는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 타임’에 “이모네를 기억하시나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린지 삼십 분 만에 내 게시글은 많은 추천을 받아 '인기 게시물'에 올랐다. 내 생각보다 많은 학우들이 이모네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댓글로 이모네에 관한 추억을 들려준 사람도 종종 있었다. 세상 모든 이모네가 오래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작고 따뜻한 가게가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모네를 거쳐갔을까?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그 곳에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을까? 지금도 세상의 수많은 이모네에선 대화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술기운에 빌려 못 다한 고백을 꺼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팍팍하고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소주 한 잔에 의지해 가며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이모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이모는 우리에게 이런 시간을 선물해 주셨어요. 한 사람을, 한 공간을,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으로 무언가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아주 커다란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이모네가 있어서 우리의 청춘이 그래도 견딜만 했다고. 자주 서럽고 가끔 좋았던 그 새벽들을 아름답게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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