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 일지, 왕복 3시간 출퇴근을 떠올리며
티격태격 변호사 가족의 일상
"나의 해방 일지" 드라마를 뒤늦게 보기 시작했다. 염 씨 형제들이 서울에서 먼 경기도까지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고 나의 젊은 날이 떠올랐다.
친정은 송파에서 대방동으로, 그리고 다시 일산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2년 차에 사법연수원이 서초동에서 일산으로 옮기는 바람에, 대방동 집에서 일산 연수원까지 왕복 3시간을 출퇴근했다.
마지막 졸업시험을 앞두고 연수원 근처로 방을 얻는 연수생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냥 연수원에 거의 나가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괜스레 집 옆 여의도 샛강을 걸으며 줄줄 울었다. 선뜻 원룸을 얻어달라고 말할 수 없었던 집안 형편이 서글펐던 걸까, 아니면 공부하기가 그렇게 싫었던가? 아무래도 후자 같다.
연수원 수료 후엔 거꾸로 집은 일산으로 이사 가고, 취업은 서초로.
1년 차 변호사들의 보금자리, 낙성대에 원룸을 얻어 2호선 지옥철 구간을 다녔다. 1년이 지나자 스스로 양재동 빌라에 전세를 얻어 갈 정도의 돈이 모였다. 2년 차 때 타고 다녔던 3호선이 어찌나 쾌적하던지!
그러다 집이 그리워 양재동 집은 동생한테 살라고 하고, 나는 혼자 교대역에서 일산 대화역까지 또 왕복 3시간을 출퇴근했다. 친정집은 대화역에서 차를 타고 더 들어가야 했는데 버스가 잘 안 왔다.
집에 전화를 하면 친정아빠가 교회 봉고를 끌고 마중 나와주셨다.
3호선 거의 끝에서 끝까지 타고 가며 어느 날은 펑펑 울었고, 어느 날은 실실 웃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날이 있었다. 20대였다.
결혼한 후에는 서울 직장 근처로 신혼집을 얻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도, 가끔 그때 대화역에서 집에 가는 꿈을 꾼다. 전화하면 데리러 오시던 친정부모님이 그리웠나 보다.
드라마에서 염미정이 집까지 터덜터덜 걸어가는 걸 보니 그 시절 생각이 또 난다.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 시절, 나는 젊었고 내 곁에 부모님이 계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