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베를린 동물원, 동물들의 세상에 초대받다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는 곳

by RNJ


동물원(動物園)
'동물들이 사는 동산'


대에 들어서면서 동물원은 다양한 비판에 직면해왔다. 철창 안에서 이상행동을 반복하는 동물들, 음식을 거부하는 동물들, 시멘트 바닥과 좁은 철창 안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동물들. 동물에 대한 배려 없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동물을 이용한다는 비판에서 동물원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시대의 새로운 요구에 따라 동물원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어왔다. 동물들을 '전시'하던 동물원은 이제 멸종위기종 보호에 앞장서며 다양한 국제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동물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하며, 동물들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다양한 방안들을 고안, 시행 중에 있다.


앞으론 동물원이 어린이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해야 할까? 우리는 살아있는 동물을 아이들에게 보여줌으로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나는 베를린 동물원에서 하나의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낮은 담장과 넓은 우리
동물들이 선택하는 인간과의 거리


베를린 동물원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담장이 없거나, 담장이 아주 낮았다는 점이었다(물론 육식동물과 주의가 필요한 일부 동물들은 울타리나 유리벽으로 분리되어 있다). 동물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고 먹이를 먹고 낮잠을 잤다. 우리는 조용히, 살금살금 다가가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캥거루들은 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캥거루를 보기 위해 관람객들은 캥거루에게 다가갈 수 없고, 캥거루들이 담장 근처로 다가오길 기다려야 했다. 캥거루와 독일 사람들은 서로가 원하는 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늑대를 보러 갔는데 담장 높이가 내 허리 높이 만한 것이 아닌가! 혹시나 녀석들이 뛰어넘으면 어떡하지?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늑대들은 나무 그늘 밑에 옹기종기 모여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마치 소파에서 잠을 청하는 강아지들처럼.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담장 바로 아래에도 늑대 몇 마리가 눈을 감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사람의 주방과 차이가 없었던
동물들을 위한 주방


영장류들의 먹이를 준비하는 주방. 동물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주방은 깨끗했고 재료들은 신선하고 질이 좋아 보였으며, 사육사들은 동물들의 먹이를 깔끔하게 세척하고 동물들의 식성에 맞게 손질하고 있었다. 원숭이 우리는 신선한 음식들로 채워져 있었고 조그마한 원숭이들은 이곳저곳으로 뚫려있는 통로를 통과하며 노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배가 고파지면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먹이를 먹고 다시 통로를 통해 놀이터로 사라졌다.



태어나서 처음 본 오카피


멸종 위기종 오카피. 오카피는 국내에선 볼 수 없으며 일부 외국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다. 책에서만 보았던 오카피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은 마치 동화 속의 동물, 유명 연예인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오카피는 천천히 풀을 뜯고 물을 마시고 나무 그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오카피는 인간의 산림 개간으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대표적인 동물이다. 전 세계에 약 35,000마리에서 50,000마리 정도의 오카피가 남아있다고 한다. 그중 한 마리를 이곳 베를린에서 볼 수 있었다.




동물원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베를린 동물원은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가득했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 어수선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았다. 내 생각에 독일인들은 동물원이 동물들의 집이자 그들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곳에 초대받은 운 좋은 손님들이고. 동물들과 인간 사이의 최소한의 경계가 있는 동물원. 작은 동물들이 관람로를 총총총 가로지르고 공작새와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곳. 베를린 동물원은 동물을 가두고 구경하는 곳이 아닌 인간과 동물이 함께 생활하고 공존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나는 동물이 전시물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오랜 시간 많은 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좁은 보호구역 안으로 그들을 내몰았다. 환경파괴와 기후 변화를 다음 세대의 짐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면 동물원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야 하지 않을까? 동물과 자연이 정복해야 될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이라는 점을. 베를린 동물원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동물원 곳곳에서 드러나는 배려의 시선들. 자연과의 공존에 대한 독일인들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멋진 동물원이었다.



만약 베를린 동물원을 방문하실 계획이 있다면
https://www.zoo-berlin.de/de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상상한 모나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