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유난히 따듯했던 고시원의 밥솥
이 정도면 새 밥이지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났을 때 '밥 먹었어?', 헤어질 때 '언제 밥 한번 먹자'가 자연스레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뼈속꺼자 밥의 민족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떤 가게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았는데 공깃밥이 1,000원을 넘으면, 그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다른 건 몰라도 밥은 건들지 마!(?)'라는 밥에 대한 강력한 애착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어서 일까요(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밥에다가 잘 익은 김치, 라면 하나, 국하나, 몇 가지 반찬만 있어도 한 끼를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고시원에 거주하시는 분들에게는 무료로 제공되는 밥과 김치(집에서 먹을 때는 몰랐지만 김치는 꽤 비싼 음식 중 하나입니다)는 정말 정말 고마운 음식들입니다. 저는 고시원에서 밥솥이 '췩췩' 소리를 내며 밥을 할 때마다 마음이 설레곤 합니다. 이번 끼니는 윤기가 흐르는 새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밥솥이 텅 비어야 고시원의 밥솥은 소리를 내며 밥을 짓기 시작합니다. 밥솥이 꽤 오랜 시간 비워지지 않는다면, 가끔 밥솥의 보온시간이 60시간을 훌쩍 넘어가곤 합니다(다들 외식을 하시나?) 그러면 밥이 돌덩어리가 되어 있곤 해요. 볶음밥을 해 먹기 딱 좋은. 달리 말하자면 무조건 볶음밥이나 국밥으로 먹어야 할... 메마른 밥이 되어 있어도 항상, 배고플 때 찾으면 밥이 가득 들어있는 밥솥이 참 고맙습니다. 이른 아침에 밥을 먹으려 해도, 늦은 저녁에 배가 출출해도 밥 한 그릇만 있다면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죠.
대학교 앞에는 학생들을 위해서 밥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식당들이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배부르게 먹고 가라는 사장님들의 따뜻한 마음씨에 배를 그득그득 채워 나가곤 했죠. 이 식당들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맛이 특별했거나, 배가 가득 찰 정도로 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푸짐하게 밥을 담아내 주던 그 마음으로 인해 배부르고 따뜻한 추억으로 남는 것 같아요.
이곳의 밥솥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따듯한 밥솥의 밥, 조금 오래되었더라도 출출할 때마다 나를 배 불려주는 따끈따끈한 밥. 대학교 앞 인심 좋았던 식당들처럼 고시원의 밥솥의 밥도 언젠간 그리워질 시간이 오겠죠? 오늘도 고시원의 보온밥솥은 따듯하게 밥을 감싼 채, 언젠가 찾아올 배고플 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 같은 허기진 사람들을 위해서요.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