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의 구수한 빵 냄새
길을 걷다 만난 빵집. 구수한 빵 냄새. 빵을 사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정신 차려보면 손에 빵 한 봉지가 들려있곤 합니다(뭐야 누가 산거야? 나라구?). 갓 나온 빵의 고소한 냄새를 맡고 있자면 '이 세상에서 처음 빵을 만들고, 처음으로 빵 냄새를 맡은 사람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아마 자신이 창조주가 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았을까요? 빵 냄새는 매일매일 맡아도 질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향만큼이나 맛과 식감도 완벽하죠. 살만 조금 덜 찐다면 좋을 텐데...
집 근처에 계란빵을 파는 조그마한 노점이 있는데, 그곳을 지날 때마다 구수한 계란빵 냄새에 군침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 있는 재료로 직접 계란빵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고시원에 살고 있는 저에겐 반죽을 섞을 거품기, 오븐, 소금, 설탕도 없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어찌어찌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무식하면 용감한 법입니다) 준비된 재료는 핫케이크 믹스, 계란, 물. 반죽을 섞을 튼튼한 손과 긍정적인 마음가짐 정도겠네요. 참고로 저는 이전에 단 한 번도 빵을 만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은 저에게 특별한 날입니다. 제가 만든 빵 냄새를 처음으로 맡을 수 있는 날이거든요.
핫케이크 믹스에 뜨거운 물과 계란을 섞고 젓가락으로 반죽이 정신을 못 차릴 때까지 휘저어주었습니다. 조그마한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게 잘 섞인 것 같네요. 계란을 2개나 풀었더니 꼭 계란찜 같은 비주얼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무언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대체로 불안한 예감은 여지없이 들어맞곤 합니다). 우유를 좀 넣어볼까? 핫케이크 가루를 조금 더 넣어야 되나? 설탕을 넣어볼까? 콘푸라이트를 토핑으로 조금 얹어볼까?(어떻게든 만회를 해보려고 발버둥을 쳤네요) 훌륭하고 독창적인(?) 생각들을 잠시 제쳐놓고, 첫 제빵이기에 순정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 정도 돌렸을까요? 반죽이 성이 났는지(?) 정신없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나 그릇 밖으로 흘러넘칠까, 중간에 후후 불어가며 녀석을 진정시키느라 꽤나 힘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5~6분 정도 사투를 거친 후 '이걸 빵이라고 부를 수 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저의 첫 빵이 탄생했습니다. 계란빵을 만들려고 했는데... 계란찜을 만든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모양은 볼품없어도 신기하게 빵 냄새가 나더군요. 어쨌든, 제가 오늘 처음으로 빵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나름 플레이팅도 해봤습니다. 햇빛이 잘 드는 제가 좋아하는 자리에 빵과 믹스커피 한 잔, 그리고 얼마 전에 출간된 저의 첫 시집을 세팅해보았습니다(셀프 광고 죄송합니다). 완벽한 한 상이 완성되었네요. 맛은... 네 다음엔 좀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만든 팬케이크는 엉망일 수밖에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이 날은 고시원에 입주하고 처음으로 빵을 먹은 날이에요. 무엇이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꽤나 설레고 신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도전과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맛(?)으로 충분히 즐거웠던 하루였습니다. 다음 빵은 조금 더 맛있게, 먹을 순 있게(?) 만들 수 있겠죠? 따듯한 햇살, 향긋한 빵 냄새와 믹스커피 한 잔. 그리고 시 한 편. 완벽한 브런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