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내려앉는 하얀 침대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곰팡이와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눴다. 화장실을 감싸고 있는 가벽에 곰팡이가 스멀스멀 자라고 있었는데, 가벽 반대편에 몹시 대충 만들어진 화장실의 느슨한 세면대 배관 뒤편에서 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색, 검은색, 녹물이 섞여 초현실주의(또는 자연주의) 작품이 매일매일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저놈의 예술혼에는 만족이 없는지 처음 입주할 당시보다 훨씬 더 선명해지고 살도 통통하게 올랐다. 빛이 들지 않는 고시원에도 콩나물 마냥 쑥쑥 자라는 존재가 있다.
처음 고시원을 지을 때 방마다 화장실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화장실 바닥이 방바닥보다 높아서 그런지 샤워가 끝나면 항상 방으로 물이 새어 나왔다.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슬프게도 화장실 모퉁이에 틀어박혀서 샤워를 해야 했다. 슬리퍼를 모아 물길을 만들어 곧장 배수로로 골인시켰다(슬리퍼의 용도가 이게 아닐 텐데). 방으로 새어 나오는 물이 감당이 안 되어 벌써 방을 한번 옮겼었다. 이번 방은 물이 조금 덜 새어 나오는 것 같긴 한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절망에 빠진 중생들을 위한 아주 멋진 조언이다! 고개를 드니 천장 바람구멍에 자라고 있는 새로운 곰팡이가 보였다. 곰팡이 퇴치제를 바르고, 창문을 자주 열어 환기를 시켜보았지만 역부족인 모양이다. 곰팡이와 인간 호흡기 간의 역학 관계를 규명하는 실험실 모르모트가 된 기분. 바람구멍 주변에 자라고 있는 곰팡이는 나이테처럼 둥글게 퍼져나가며 자연의 미학과 엔트로피의 증가를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빛이 잘 들지 않고 환기가 되지 않는 고시원은 사람이, 아니 곰팡이가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뻥 뚫려있는 화장실 덕분에 샤워만 끝나면 방 전체가 스팀 사우나로 변신했다. 환풍기는 당연히 없다. 비가 오는 날은... 그야말로 곰팡이를 위한 습기 무한 리필 출장 뷔페가 차려졌다. 곰팡이가 생기자마자 곧바로 닦아내기 시작했지만 며칠 사이에 새로운 지원군이 도착했다. 말 그대로 총력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장마가 시작되었다. 습기를 가득 먹어 눅진해진 벽지. 끊임없이 물이 새어 나오는 화장실. 다가올 전쟁의 징조인지 천장 바람구멍에 물이 맺히기 시작했다(공용 에어컨이 분명히 제습 모드였는데?). 곰팡이의 대대적인 공습을 시작으로 1차 곰팡이 전쟁(GFW1 : gosiwon fungus war 1)이 시작되었다. 참호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개활지에서 치열하고 지루한 전투가 벌어졌다. 나는 고시원 바닥에 난방이 들어서기 시작할 전후시대, 겨울이 벌써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과는 달리 나는 습하고 따듯한 고시원의 겨울에 무너질 것 같았다(다행스럽게도 예상과는 달리 고시원의 겨울은 그냥 춥고, 춥고, 추웠다).
고시원은 대부분 상가 건물이나 상업 지구에 위치하여 일조권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고시원이 다중이용시설로 지정되고,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면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지만 여전히 조망과 환기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런 사태의 백미는 바로 내창방이 아닐까. 물론 이를 정확히 지칭하자면 무(無), 또는 논(none) 창방이 맞지만 복도로 연결된 창이 있기는 하니.... 아무튼 고시원 사업자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방을 쪼개야만 하고, 햇빛이 들지 않는 공간에도 임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윤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하지만 법과 제도가 보호하고 감시하는 아래에서 상호 합(合)을 이루는 윈-윈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고시원을 이리저리 관통하는 헐겁고 혼란스러운 제도와 규제는 네오-제로섬 게임을 만들어버렸다.
고시원 옷장에 넣어놓은 제습제는 며칠 지나지 않아 금붕어를 키워도 될 정도의 물이 채워진다. 서큘레이터나 선풍기는 고시원 규정상 사용할 수 없으며, 제습기가 만들어내는 소음은 안 그래도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고시원을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 것이 분명했다. 습기 조절 화초를 키우기엔 공간이 좁고 오히려 화초에게 죄송스러운 공간. 내가 찾은 최선의 방법은 빠르게 시원한 물로 샤워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집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방법 같다). 곰팡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집을 버리는 나의 모습에 허탈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Abandon house! Abandon room!).
인간이 곰팡이의 덕을 보는 경우가 굉장히 많지만 고시원의 곰팡이는 주택의 질적 저하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일 뿐이다. 15세기에 건립된 해인사 장경판전은 아주 오랜 시간 팔만대장경이라는 목판 인쇄물을 품어왔다. 통풍을 고려한 과학적인 설계와 습도 조절을 고려한 건축 및 토목 재료. 500년을 버텨온 과거 유산에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이 오래된 유산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여전히 산재해 있다는 점에서 마냥 감탄하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아, 그래서 눈을 뜨면 무엇이 보입니까? 나는 일상과 마음으로 확장되는 녹빛 전장, 끝나지 않는 음지 속 습전(濕戰)이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