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전화 한 통과 두 통의 무게에는 제법 큰 차이가 있다. 학생들이 서술형 문제와 씨름하는 틈을 타서 급히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들어보니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아기와 엄마는 아빠 없이 응급실로 출발했다. 속이 타들어갔다.
몇 년 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2주 동안 학생 실습을 했었다. 속싸개와 이불로 둘러싸인 아기를 들고 찾아오는 엄마 보호자들이 참 많았는데, 생사의 기로에 놓인 환자를 우선적으로 돌보다 보니 상대적으로 상태가 괜찮은 아기들은 진료 순서가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아기 엄마는 되도록 아기를 침대에 내려놓지 않으려고 했다. 혹여나 아이를 영영 놓쳐버릴까 봐 그랬을까? 커튼 너머에선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 울음소리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입장이 바뀌어 무기력한 보호자, 그것도 수킬로미터 떨어진 학원에서 발을 동동 굴리며 전화를 기다리는 아빠가 되었다. 아기 엄마는 의사를 만나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의료진은 친절했으며, 아이는 별 다른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다른 집 아이들을 돌보느라 우리 집 아이를 바라볼 수도 없었다. 밤 10시까지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슬프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생업은 부모를 광대로 만든다. 20년 전,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는 퇴근 후 소파에 앉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셨다. 중요한 미팅이 있었다고. 어른들의 무심함은 찢어지고 뭉개진 마음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