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에는 전복을 선물로 받았다. 그것도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생전복. 퇴근 후에 쇠숟가락 하나, 빳빳한 칫솔 하나를 들고 손질을 시작했다. 전복 손질 유튜브 영상을 3편쯤 보고 숟가락을 열심히 휘둘렀지만 첫 결과물은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아홉 번쯤 전복을 집에서 떼어냈을 때 감이 생겼다 생각했으나 얕은 실력과 우연찮은 성공에 방심한 나머지 꺼칠한 전복 껍데기에 손을 베이고 말았다. 집을 잃은 전복은 축축한 도마 위에서 힘차게 꿈틀거렸다. 제주 해녀들은 아기가 울 때 삶은 전복을 입에 물려줬다고 한다. 아이는 전복을 쪽쪽빨다 잠에 빠져들고, 제 소임을 다한 전복은 한 번 데쳐진 다음 저녁상에 올라간다.
아기가 아빠의 어금니에 눌린 신음소리를 들었던 걸까? 잘 자던 아기가 우렁찬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손을 깨끗이 씻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았다. 그리고 아이 엄마는 아기에게 곧장 젖을 물렸다. 다음날, 아기 엄마가 좋아하는 토마토소스에 전복을 듬뿍 넣어 리소토를 만들어 먹었다. 우리는 경쟁하다시피 숟가락을 놀렸고 우리 앞엔 설거지가 필요 없는 새 그릇이 놓여있었다. 이렇게 또 한 끼를 해결했다.
시간이 흘러, 아기는 전복을 우물거릴 5개의 이빨이 생겼다. 끼니 준비가 쉬워진 탓에 우리는 이전보다 멀리, 그리고 자유롭게 나들이를 다닐 수 있었다. 아기 엄마가 사랑하는 물 빠진 금능 해안은 그야말로 소라게의 세상이었다. 까만 고동을 차지한 소라게 한 마리를 골라 아내의 손바닥에 올려주었다. 잠시 후, 손바닥을 톡톡 건드리는 집게발의 앙증맞은 촉감에 아내는 환히 웃었고 아기는 껍데기만 조물조물 만졌다. 소라게는 고둥이나 소라를 살을 파먹은 다음에 껍데기를 자신의 집으로 삼는다. 아기가 막 돌이 지났는데 원룸에서 투룸, 투룸에서 쓰리룸으로 벌써 3번이나 이사를 했다. 조만간 우리 가족도 소라게처럼 다시 낯선 집의 대문을 톡톡 두드리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