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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육아시 2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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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J Mar 21. 2024

가발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2번째 모발 기부를 앞두고 있다. 25cm 길이의 머리카락이라면 누구나 기부가 가능하며, 수백 명의 머리카락을 모으면 한 아이를 위한 가발이 완성된다고 한다. 


 아이가 생기니 아픈 아이의 사연을 들으면 나의 이야기처럼 마음이 찢어진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잠시 아기들을 돌볼 때, 아기들이 참 작고 귀엽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기의 보호자, 부모는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중환자실을 찾은 엄마들의 눈은 항상 퉁퉁 부어있었고, 아빠들의 수염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졌다. 일회용 가운으로 무장하고 인큐베이터 앞에서 발을 구르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내가 처음 아기를 안을 때 두려움이 엄습했던 것처럼, 보호자들은 인큐베이터에 손을 대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보호자로 병원에 머무를 때 나는 가끔 비상계단을 찾아갔다. 의료 기계의 알림을 막을 수 있었던 공간은 방화문이 지키던 계단 밖에 없었다. 계단 한편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기면 멀리서 사람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비슷하게 느끼고 비슷하게 슬퍼했다. 울음소리가 우리의 위로였고, 침묵은 비애로 가득한 마음을 짓눌렀다. 아이가 가벼운 기침을 할 때,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던 병원 계단이 떠올랐다.


 주인을 잃은 머리카락은 조만간 새로운 주인을 만날 것이다. 아이의 친구 또는 누나와 형이 될 이름 모를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함께 빌어본다. 


http://www.kwith.org/sub/02-givehair/2.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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