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환자를 위한 2번째 모발 기부를 앞두고 있다. 머리카락의 길이가 25cm만 넘으면 기부가 가능하며, 수백 명의 머리카락을 모으고 엮어야 한 아이를 위한 가발이 완성된다고 한다.
이제 아픈 아이의 사연을 들으면 나의 이야기처럼 마음이 갈라지고 찢어진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실습을 나갔을 때 생명의 끈을 쉽게 놓지 않는 아기들을 보며 연민과 생명의 경이를 함께 느꼈었다. 중환자실을 찾은 엄마들의 눈은 항상 퉁퉁 부어있었고, 아빠들의 수염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졌다. 일회용 가운으로 무장하고 인큐베이터 앞에서 발을 구르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내가 갓 태어난 아기를 처음 안을 때 두려움이 엄습했던 것처럼, 보호자들은 인큐베이터에 손을 대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중환자의 보호자로 병원에 머무를 때 나는 가끔 비상계단을 오르내렸다. 정신을 갉아먹는 의료 기계의 요란한 알림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은 방화문이 지키던 비상계단 뿐이었다. 평시에 방화문은 무겁고 두꺼운 벽일 뿐이지만 슬픔이 파도처럼 몰아치는 날에는 울음소리를 삼켜주는 고마운 방음벽이자 요람이었다. 계단 한편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으면 멀리서 사람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비슷하게 느끼고 비슷하게 슬퍼하는 가여운 존재였다. 아이가 쉬지 않고 기침을 할 때,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던 병원의 창문 없는 계단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