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관계 속에서 새롭게 정의되거나 만들어지는 언어가 있는데, 이는 성장하는 어린 자녀와 부모의 관계 속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옹알이를 겨우 해내던 아이는 이제 어느 정도 부모의 말을 제 맛대로 반복 하는데, 이러한 이유로 가족이 아닌 다른 이들은 적정 수준의 '통역'을 요구하기도 한다. 아이의 언어는 사라지는 소수 민족의 고유 언어나 다름이 없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도 부모와 공유했던 언어를 잊을 테니 말이다.
사실 아빠인 나초자도 아이의 언어에 담긴 의도를 어렴풋이 넘겨짚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대화가 부드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마다 땡깡, 예를 들자면 나의 안경을 훔치는(아빠가 안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강경한 방식을 선택한다. 이래도 저래도 귀여우니 참, 덕을 쌓을 시기라 생각하고 웃으며 넘어간다.
언어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많이들 말하는데, 아이의 그릇은 종지 정도에 해당할 것 같다. 많이 담아낼 순 없지만 입맛을 돋울 새콤한 양념을 담아내기엔 충분한, 내용물이 훤히 보이는 깊이 없는 그런 그릇 말이다. 아이의 언어는 가볍고, 유쾌하고, 자극적이다(최소한 부모에게는 그렇다). 아이는 직관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며 잘 굴러가지 않는 혀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숭숭 뚫린 이빨 사이로 소리를 내뱉는다.
부모가 아이의 언어를 듣고 해석하고 다시 발언하는, 아빠의 안경이 휘어지지 않는 평화로운 비폭력 과정이 몇 사이클을 돌게 될 때 즈음이면 우리 사이에 새로운 단어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오늘은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피'라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이가 말하는 '피'가 무엇인지 짐작하며 글을 읽으면 조금 더 흥미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피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가장 따듯한 남향 방을 차지한 아기는 부모보다 일찍이 기지개를 켠다. 애착인형을 쭙쭙거리다가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침대를 나서고, 방문을 활짝 열어 엄마와 아빠를 찾는다. 우리는 비몽사몽 일어나 어린이집 보낼 준비를 한다. 우리 집에서 밥은 아빠의 담당인데, 세수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쌀을 박박 문질러 씻고 있을 때 아이는 '피!' '피!'를 외치며 아빠의 다리에 엉겨붙는다. 그리고 '안아!!!' 자기한테 필요한 말은 기똥차게 빨리도 잘 배우는 우리 집 아이다. 아빠는 국자를 내려놓고 가스불을 끄고 아이를 안은 채 커피 머신에 전원을 누른다.
대부분의 남자아이는 자동차(특히 버스), 자동문 같은 '자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기계에서 쉬이 눈과 손을 떼지 못하는데, 이는 우리 집 아이도 마찬가지다. 유전자 속에 새겨진 본성적 명령 때문인지 커피머신은 유아기 아이에게 그야말로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소리도 요란하거니와 투명한 물을 씨커먼 꾸정물로 단숨에 바꾸어버리는 요상한 기계라니. 아이는 직접 커피캡슐을 고르고(용하게도 늦은 저녁에는 디카페인 캡슐을 골라준다) 큼지막한 컵을 내려놓고 커피 추출 버튼을 누른다.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질색하는 편이지만 아이는 결단코 두 가지 추출 옵션 중 에스프레소 버튼을 뚱뚱한 엄지로 눌러버린다. 아이의 5옥타브 '피!'는 바로 커피를 내리는 일련의 과정의 시작을 알리는 명령어였다.
커피 추출이 끝나면 나와 아기는 컵 입구에 코를 박고 커피 냄새를 킁킁 거린다. 아이는 처음에 질색을 하며 컵을 밀어냈건만 지금은 꽤나 커피 향을 즐기는 모양새다. 그리고 컵을 잡은 채, '아 뜨!' '아 뜨!'(아마도 '아 뜨거워!'가 아닐지)를 연발한다. 여기까지가 아이가 '피!' '피!'를 말했을 때 나에게 요구하는 행동이다. 커피를 함께 내리고 커피 냄새를 함께 맡고 뜨거운 컵을 만지며 '아뜨, 아뜨!'라고 소리치는 것까지. 덕분에 나는 하루에 커피를 하루 최소 3잔 이상 마시고 있으며 카페인은 더 이상 나를 각성시키지 못하는 플라세보 약물이 되었다.
아이가 커피를 '피'라고 발음하는 이유는 연구개 파열음인 'ㅋ'발음이 이 시기에 어려운 탓이기도 하고, 안 그래도 어려운 발음을 2음절 단어로 완성하기에는 더욱 난이도가 높아지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는 계속해서 완전한 발음을 따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오늘은 커피를 보며 '비둘'(?)이라 발음하고 말았다(썩 긍정적인 신호 같진 않았다). 아무튼 아이는 '피'라는 단어를 만들어냈고 기억하며, 아빠는 아이의 요구에 반응하며 정확한 발음을 되뇌며 하루하루 커피 중독자의 우물로 빠져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따라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아이를 먼저 키우신 많은 선배님이 '아이의 말을 기록해 두어라'는 조언을 빠뜨리지 않았다. '지금이 가장 이쁜 시기고, 이 기억으로 평생을 보듬고 살아간다'는 말과 함께.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가득 찬 클라우드가 매일 더 훌륭한(= 더 비싼) 서비스 안내를 면전에 들이밀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보의 양은 이미 충분하니 깊이 있는 기록을 조금씩 남겨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집 근처의 카페에서 '피'를 마시며,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밀어두었던 조언들을 실천으로 옮겼다. 이 글은 아이의 언어와 성장을 관찰하고 사유하며 발견하는, 그리고 과거에 존재했던 사랑과 활력을 되새길 훌륭한 연구노트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아이가 충분히 컸을 때, 같이 '피'를 마시며 함께 읽을 이야기집이 하나 생긴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에게도 다시 한번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