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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물 쭈물"

by RNJ


"쭈물 쭈물"


"축구! 축구!"


아이는 엄마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아빠를 데리러 가는 길이고 아빠를 만나면 다 같이 축구를 하러 갈 거라고. 그리하여 축구공도 챙겨 왔거늘 아빠란 사람은 해가 저물었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약속의 파기를 선언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는 아빠의 양심을 두드린다. 두 돌짜리가 한 서린 목소리로 구슬피 울기 시작했다.


"축꾸! 축꾸!"


이미 쏟아진 말이었다. 집에 돌아와 청바지를 벗고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옷을 갈아입는 이 짧은 시간에, 아이는 축구라는 말을 스무 번 가까이 쏟아냈다. <메멘토>의 주인공도 아니고! 글이라도 알았다면 온 장판에 크레용으로 축구라고 써놓을 기세였다. 분명 어린이집에서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을 텐데, 카페인도 없이 이리도 쌩쌩할 수 있음이 신기할 따름이다.


온종일 두다다다 달리는 데다 얼마 전엔 점프까지 배웠으니, 몰캉하기 짝이 없는 두 다리가 14kg에 육박하는 육중한 몸뚱어리를 당해낼 리 없었다. 밤만 되면 발라당 누워 제 다리를 만지며 "쭈물 쭈물" 쭝얼거린다. 의태어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잠자는 연기를 하는 아빠가 다리를 주물러 줄 때까지 "쭈물! 쭈물!"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아이의 다리는 치킨 오이스터만큼이나 부드럽고 말랑말랑하여 주무르는 맛이 끝내준다. 아이 엄마는 아이의 뿔룩한 살과 살이 만나서 생기는 굴곡을 '크로와상'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다리를 한쪽씩 분담하여 퉁퉁 부은 다리를 부드럽게 반죽한다. 어두운 방, 나른한 봄, 여기에 무료 마사지까지. 아이는 요즘 이렇게 잠에 빠져든다.


아이가 잠든 늦은 저녁, 2년 만에 다시 운동장 트랙 위에서 느슨해진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버티기 위해 운동을 해야만 하는 아버지는 달빛 아래에서 뒤뚱뒤뚱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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