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함=행복? 이게 맞는걸까?
나는 혼자인 삶에 익숙한 사람이다.
늦은 결혼으로 인해 혼자 산 시간도 길었고,
원래 기질 자체도 독립적인 편이었다.
혼자 사색하는 걸 좋아하고,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채워진다.
혼자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시간들이 내겐 깊은 충전의 순간이었다.
그런 내가 마흔이 넘어 결혼을 하고,
아이 없이 5년을 살았다.
아이 없는 부부로 살아가는 삶.
주변 사람들은 “편하겠다”, “부럽다”고들 말했다.
그게 진심인지, 예의상 건네는 말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한때는 나도 ‘편함 = 행복’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공식이 내게는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믿었던 건,
어쩌면 내 삶이
늘 편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돌아보면, 진짜 편한 건
혼자 사는 미혼일 때였다.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관계 속에서
포기하고 맞춰 나가야 했고,
실망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 속에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다.
혼자일 때는 편했지만, 너무 잔잔했다.
결혼한 삶은 다이나믹했다.
좋은 일도, 힘든 일도 혼자일 때보다 많았다.
나는 너무 좋을 것도,
너무 나쁠 것도 없는 잔잔한 삶보다는
좋은 일도 많고, 힘든 일도 많은 쪽을 택하고 싶었다.
아이도 그런 맥락에서 갖고 싶었다.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삶의 밀도와 진폭이 커지는 방향으로 가고 싶었다.
그게 왠지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삶' 같아서 좋았다.
물론 복잡한 삶의 스위치를 모두 끄고
혼자살던 그때의 내 방으로 돌아가서
뒹굴뒹굴 하고싶다는 생각은 무수히 했고
지금도 그렇다.
결혼 전 혼자살던 그때의 내 삶은 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가끔씩 동경할 뿐
계속 그 삶이 이어지길 바라는건 아니다.
나는 1남 4녀 중 셋째 딸이다.
어릴 적부터 늘 북적대는 집안에서 살았기에,
그 분위기가 피곤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결정할 만큼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때,
굳이 또 번잡스러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마흔이 넘으니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에너지도 하고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나이든 미혼으로 있으면서
하고 싶은 걸 어느 정도 해 봤다.
매년 해외여행도 다녔고, 각종 모임도 다녔고
배우고 싶은 취미도 다 배워보았고,
일에서도 푹 빠져 재미를 느꼈다가
어느 순간 다시 지루해졌다.
좋은곳을 가고 맛있는것을 먹고,
쉬고 싶을땐 방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뒹굴뒹굴하고 나 자신에게 좋은 것을 아무리 선물해도,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비로소 고민이 시작됐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삶이 내게 진짜 행복을 줄까?
철학적인 질문이 마흔을 넘어서야
겨우 내게로 다가왔다.
그 무렵, 사주에 빠졌고 독학으로 공부하며
지인들의 사주를 봐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삶에 대해 관심이 깊어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러움, 순리, 조화와 균형, 상호보완
뭐 이런 단어들이 마음속에 와 닿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늦게 철든’ 나는 42살에 결혼을 했고,
그 후 엄마가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30대까지만 해도 나는 결혼을 위해 소개팅을 나가면
늘 상대방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데 집중했다.
그 사람이 날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사람의 성격은 어떤지를 보려 했다.
하지만 뒤늦게 철이 들고 보니
시선은 밖이 아니라
내 안으로 향해야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누군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가
먼저였다는 걸.
내가 단단하게 서 있으면,
어떤 상대를 만나도 상관이 없는거였는데
나는 단단히 서 있는 상대를 만나려고만 했지
나를 단단히 세울 생각은 없었던 거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외모뿐 아니라
내면도 많이 어렸던 것 같다.
“동안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진짜 ‘동안’이었던 건 내 마음이었다.
조금 더 무르익어야 했고,
성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그게 내가 지각생 인생을 살게 된
하나의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