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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딩크, 선택의 끝에서 마주한 진짜 마음

딩크모임에 참석하다

by 찐스마일

평온한 일상은 이어졌지만, 아직도 둘이 사는 삶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리고 주위에는 부부 둘만 사는 지인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딩크’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마치 내 미래를 살짝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나는 네이버의 딩크 카페 두 곳에 가입했다.


그곳에는 결혼 전부터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미혼 딩크도, 결혼 후 아이 없이 사는 기혼 딩크도 있었다.

공통점은 뚜렷한 소신과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감이었다. 간혹 나처럼 임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해, ‘비자발적 딩크’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담담하고 단단한 모습이 부러웠다.


마침 오프모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했다.
50대 초반 언니 두 명, 30대 후반 동생 두 명, 40대 중반의 나, 그리고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 이렇게 여섯 명이 모였다.


모임주최자는 50세였고, 밝고 활기찼다. 서른아홉에 동갑 남편과 결혼해 시험관 시술을 여덟 번이나 하다 결국 포기하고 딩크로 살게 되었다고 했다. 시험관 포기 후 자연임신을 했지만, 유산되었고 그 뒤 입양도 고려했지만 남편의 반대로 지금은 둘만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현재 줌바댄스를 배우며 활력을 찾고, 아파트 헬스장 카운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후회는 없다고 했다. 이 언니의 결혼생활은 마치 신혼생활같이 느껴졌다. 그녀의 모습은 안정감 있고 행복해 보였다.


또 다른 50세 언니는 남편과 나이 차가 컸다. 남편 나이가 60에 가까워지자, 노년의 외로움과 건강이 걱정된다고 했다. 대화 속에 묻어나는 약간의 우울함도 느껴졌다. 이석증으로 한의원 치료를 받은적이 있다고 했다. 동갑이었지만, 주최자언니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30대 후반의 한 동생은 결혼 5년 차. 시험관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둘이 살기로 했다고 했다. 그녀 역시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강아지 한마리를 키우며 사는 모습이 알콩달콩해 보였다.


또 다른 30대 후반 동생은 결혼 10년 차였다. 아이를 갖고 싶어 시험관 시술도 받았지만, 지금은 둘이 사는 게 편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와는 나중에 따로 만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모임에선 아기를 갖고 싶다는 말을 못 했어요.
딩크의 삶이 좋다고 했지만, 저는 여전히 아이를 너무 원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는 보육원 아이를 ‘정서적으로 후원’하고 있었다. 모임에서 본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 말하지 못한 진심이 누군가에게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는 여행을 좋아했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편안해 보였다. 결혼연차는 얼마 안 된 듯 했고, 에너지도 많고 동적인 성향의 언니였다.


그날 깨달은 건, 딩크 중에도 ‘비자발적 딩크’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모두 각자의 이유와 상황 속에서 나름의 균형을 잡고 있었다.

"아이 있는 부부보다 딩크가 10년은 젊어 보여."
"취미 생활도 더 열성적이고, 부부 관계도 더 좋대."

모임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

카페의 운영자는 부부만 사는 삶에 대한 책을 쓴 저자이기도 했다. 책을 읽지 않은 나에게도 꼭 읽어보라 권했다. 읽어보면 딩크의 삶을 잘 꾸려나가는데 도움이 될꺼라고...


그들은 정기적으로 해외여행을 다니고, 아이가 있는 지인들과는 생활 패턴이 달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고 했다. 대신 여기서 각종 소모임을 즐기며 친목을 이어갔다. 아이 양육비 대신 자기계발에 투자해서 제2외국어를 배우고 있는 경우도 많았고, 주말 아침에는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취미를 즐기거나 늦잠으로 보낸다고 했다.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독서 소모임도 추천했다.


세 시간이 훌쩍 흘렀다. 웃고 떠들고, 커피 세트를 선물받으며 따뜻하게 마무리된 첫 만남이었다.

처음이었지만 공통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금세 친해졌고, 편안한 공기가 오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문 밖에 비친 내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났다.


즐겁게 웃고 떠들며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마치 오래 눌러둔 무언가가 스스로 터져 나온 듯했다. 그때서야 나는 내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시술을 멈추면 더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질 줄 알았다. 아이 없는 삶에도 금세 적응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아이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아이 없이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건 어쩌면 내 진심을 애써 외면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완전히 행복해지려면, 결국 내 삶에 아이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날 인정했다.

그리고 몇 달 뒤, 나는 다시 난임병원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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