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네 살 되던 해, 나는 복직을 했다. 가정주부로 집에서 아이를 양육할 때 보다 두 배는 바빠졌다. 몸과 마음이 피곤한 날도 많았지만 장점도 있었다.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시댁이라는 두 글자가 아주 많이 잊혔다. 일과 아이에게 집중할 시간도 모자랐기 때문에 퇴근 후 아이를 재우고 바로 잠이 쏟아졌고 일어나면 다시 출근, 이렇게 고된 일상을 반복하며 지내다 보니 시댁 식구들을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숨이 좀 트이게 된 것은 지난번 리조트 사건 이후로 나는 시댁에 가지 않기로 했다. 모든 기념일을 포함해서 가지 않았다. 일단 내 마음을 다독여줄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예전 같았으면 남편의 눈치를 보고 내 마음이 어떻든 다시 못 이기는 척 갔을 텐데, 이혼한다는 각오로 시댁과 여행 중이던 리조트에서 뛰쳐나왔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 인생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살고 싶어졌다.
나의 이런 결정으로 인해 설사 내 결혼생활이 깨질지라도 나는 나를 더 사랑하기로 다짐했고 나의 결정을 믿었기에 남편에게도 내 마음을 전달했다. 나는 시댁에 가지 않겠다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이런 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지금 당장 헤어져도 좋다고 말했다.
남편도 이번에는 다르다고 느꼈는지 시댁에 가야 하는 것에 대해 강요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일단 상처부터 다독이라고 걱정해 주었다.
남편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낳은 아비로서의 책임감으로 가정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자기 가족이 아무리 나쁜 짓을 했어도 만나지 않겠다는 와이프를 진심으로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쨌든 와이프가 다시 못 이기는 척, 계속 자기 가족들과 잘 지내길 바랄 것이다. 나도 이해한다.
반대로 남편이 우리 가족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면, 설령 우리 가족이 큰 잘못을 했어도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더는 남편의 체면 생각해서 며느리 노릇 하느라 내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연극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길 만큼 힘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들이 술을 끊거나 적당히 마시지 않는 한, 만나면 갈등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일을 하다 보니 외적으로 내면적으로 나 자신을 가꾸게 되고 얼굴빛이 살아났다. 다른 잡생각 할 여유도 없었다. 하루종일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시댁 사람들로부터 해방되어가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시댁 행사에 하루라도 빠진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고 시도해 본 적 조차 없었는데 안 가고 안 가다 보니 나도 조금씩 용기가 생기고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이었다.
물론 불편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기 집에 안 가는 내가 못마땅한 것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남편 덕분에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시댁에 가서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나쁜 감정으로부터 해방이 되려면, 반드시 나를 아프게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거리를 두고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일단 집을 나가 돈을 버는 일이었다. 돈은 몸도 마음도 자유롭게 해주는 데 최고의 특효약인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