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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소 Sep 27. 2023

착하기만 한 남자는 조심하세요

결혼할 때 피해야 할 남자 유형



내가 지금의 남편하고 결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착함”이었다.
1년 안되게 연애하는 동안 남편은 단 한 번도 자기의 의견을 강하게 어필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평소 험한 말이라든지, 남의 흉 같은 듣기 안 좋은 말은 일절 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험담을 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지,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흥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한마디로 그냥 겉으로나 속으로나 착한 모범생이다.

또한 나는 남의 말을 쉽게 흘려듣지 못하고 감정의 소용돌이가 조금 있는 반면 남편은 감정이 쉽게 요동치지 않는다. 항상 평온하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밥만 잘 먹고 푹 자는 사람이다.

거친 스타일의 남자를 만나본적도 없고 평소 극혐하기 때문에 남편의 올곧은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 ‘착함’이 가장 큰 단점이 되어 나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는 중이다.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착하기만 한 남자를 만나지 말라고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싶을 정도로 착하기만 한 남자에게 질려버렸다.

남편은 너무나도 착했지만 그 착함은 결국 온갖 시련 속에서 아내의 방패가 되어주지 못한 채 방패를 뚫고 나와 나의 심장을 찔러버리고 말았다. 남편의 방패는 단단한 방패가 아니라 솜처럼 말랑말랑한 방패였다. 대담함, 자기주장 같은 건 없었다.

만약 나와 잘 맞고 술을 먹지 않는 시댁을 만났더라면 이런 점이 굳이 단점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시댁은 온 집안 식구가 술을 마실뿐더러 남자 형제들만 있는 집안이라 분위기가 거칠며 보통 한 사람당 소주를 4병은 마시는 고래들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 술 취한 상태로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나를 공격한다. 온 집안 식구들이 말이다. 그럼 남편은 단단하게 방패를 내세워 나를 막아주면 그만이다. 그럼 아내는 스트레스를 덜 받고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착하기만 한 남편의 방패는 솜처럼 가벼워 시댁 식구들이 술 먹고 거칠게 하는 말과 행동을 그대로 뚫고 흡수해 나의 심장을 찔러버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남편은 그 거친 술판에서 나를 구해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눈 감고 귀 막고 여태 10년 가까운 세월 나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집에 와서 별의별소리를 다 하며 제발 술 먹고 나에게 함부로 하는 것들을 막아달라고 부탁도 해보고 빌어도 보았다. 하지만 물러빠지게 착한 남편은, 아니 이제 그 무능함을 착하다는 좋은 표현으로 말하고 싶지도 않다. 멍청하다, 미련하다는 표현이 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절대 지니고 있으면 안 될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미련한 남편은 알았다고는 하지만 절대, 술판이 벌어진 그 자리에서는 나에게 날아오는 공격들을 막아주지 않는다. 심지어 본인 동생인 도련님이 술을 먹고 형수인 나에게 언성을 높일 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내가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우리 남편이 착하다는 것에는 좋은 의미의 착함이 아닌 우유부단함과 자기주장 결여, 미련함, 멍청함 등이 포함되어 있는 착함이었다.

누군가는 그런다. 그래도 성질이 더러운 남자는 함부로 하는 시댁을 막아주지만 와이프에게도 함부로 한다고.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그저 이 맹꽁이 같은 남편과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답답함에 대한 심정 또한 성질 더러운 남자랑 사는 여자 또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시아버지가 아픈 며느리에게 밤 12시에 10통의 전화를 하건 말건, 아무 말하지 못하고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길 바라는 착하기만 한 남편을 통해 내가 얻은 게 있다면 사슴 같았던 나의 영혼이 점점 사나운 여우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보호자가 나를 막아주지 못하니 이 험한 시댁이라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사나워지는 웃픈 일이 생기더라.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동안 나 역시도 할 말을 제대로 못했던 온순한 성격이라, 사나워져 가는 성격에 대해 시원하고 후련한 점도 있지만 고상하고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은 중년의 나이에 거친 아줌마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어 새삼 두렵고 창피하기도 하다.

성격적으로 무능하게 착하기만 한 남편을 만났더니, 나는 지독한 여우, 사나운 아줌마로 변해가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착하기만 한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뜯어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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