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아들 안 낳고 뭐 했어?
시댁 결혼식 날 생긴 일
도련님 결혼식 1시간 전에 도착해 손님을 맞고 계신 시부모님께 먼저 인사를 드렸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시어머니가 남편과 나에게 물었다.
남편은 손으로 내 얼굴을 가리키며,
"이거 하느라 늦었죠 뭐~"
(그동안의 글은 읽어보셨다면 시댁과의 대략적인 이야기를 아실 수 있을 것임)
시어머니는 위아래로 나를 스캔하시며 인상을 찡그린 채 웃으신다. 좋은 의미의 미소는 아니었다.
역시나, 남편도 시댁도 변한 것은 없었다. 시댁과 여러 번의 갈등을 겪은 후 자체적으로 거리 두기를 하고 있던 나는 그래도 결혼이라는 큰 행사인데 참석 안 하기 뭐해서 정말 큰맘 먹고, 눈 딱 감고 참석을 했다.
그래도 남편이 장남에 나는 맏며느리인데 평소 차림으로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아침부터 미용실에서 머리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물론 남편도 머리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그리고 결혼식 1시간 전쯤 도착했고 크게 늦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주인공도 아닌데 1시간 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남편의 생각도 같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며느리를 보자마자 왜 늦었냐며 타박을 하시다니...
거기다 남편은 더 큰 한 술을 뜨신다. "나" 때문에 늦었다고...?
미용실을.. 나 때문에 간 건가?
사실 아무 옷이나 입고 간다고 했을 때도 369,000원짜리 원피스를 사라며 부추기고 미용실에서도 함께 풀메이크업을 받으며 자기 오늘 잘생겨 보이지 않냐고 헛소리 하던 사람이 남편이다.
누굴 위해서 평소 하지도 않는 화장과 머리, 그리고 옷차림을 했는데 나 때문에 늦은 거라니?
거기다 손으로 곱게 화장한 내 얼굴을 똑바로 가리키며, 자기 엄마에게 꼭 이르듯이, "쟤 때문에 늦었어요".... 식은 어디서 배운 고자질이지?
괜히 왔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연을 끊지 못하고 독하게 먹지 못한 마음 때문에 결국 상처는 내 몫이다. 늘...
그래도 기분 나쁜 티 내지 않고 계속해서 손님들께 인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의 큰어머니라고 하시는 분이 나에게,
"여태 아들 안낳았어?"
라고 물으셨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을 낳아야지, 딸만 낳았어? 아들 누가 낳아 그럼? 아들은 있어야 돼. 아들을 낳아야 대를 잇지.."
오 마이갓....
현타가 크게 왔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시부모님도 아들 낳으란 소리는 하신 적은 없으시다. 그런데 여태 말 한마디 해보지도 않은 남편의 큰어머니라는 분이 처음 하신 말씀이 아들을 낳으라는 소리라니. 거기다 그 소리를 듣는 내 옆에는 말 귀 다 알아듣는 내 딸이 서있었다.
그리고 남의 편 님도 바로 옆에서 듣고 계셨다. 그렇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남편은 그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간신히 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녹초가 되었다. 그런데 남편은 식장에 와준 직장 동료가 고마워서 바로 술을 사주러 나간다고 했다. 황당했다. 그럼 나는? 제일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은 사실 내가 아닌가? 어떻게 오늘 같은 날, 집에 오자마자 술을 마시러 나간다고 할 수 있지?
정말 센스와 눈치도 없고 우유부단하며 상대에 대한 배려까지 없는 대단한 족속이다.
나는 하루종일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 누구도 변하지 않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이제 예전만큼의 상처는 받지 않는다.
시댁도 시댁이지만 남편의 처세는 여전히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