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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변곡점들

영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

#1 사유를 거쳐야 맞춰지는 퍼즐, <하얀 리본>

by 조종인

'내 영화 감상 방식에 새로운 시야를 가져다준 영화는 뭐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해 봤을 때, 떠오르는 영화들은 아주 많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여러 번 곱씹게 되고, 나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남아있는 영화가 하나 있다. 바로 <하얀 리본>이다.



<하얀 리본>은 오스트리아 감독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로,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평론계의 아이돌, 이동진 평론가의 만점 작품이라는 사실이 내게 주는 호기심, 포스터로부터 느껴지는 기묘한 분위기, 그리고 어려운 영화에 대한 나의 도전 정신까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심리들이 겹쳐져 이 영화를 시청하게 되었다.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학교 교사인 화자가 당시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마을에서는 불가사의한 사고, 폭력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인물들은 서로를 의심하지만, 영화는 어떤 진실도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 채 마무리된다.



이 영화를 처음 다 보고 난 뒤 드는 감정은 "당황 그 자체"였다. 일단 영화의 서사 진행 속도가 빠르지도 않은 데다, 연출은 너무 건조해서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점들은 둘째 치더라도, 미스터리 영화인데 관객에게 어떤 진실도 알려주지 않은 채 마무리한다는 사실이 당시의 나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흩어져 있던 사유들이 한 데로 모이고, 영화의 주제가 내 안에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이 영화에 대해 누군가가 짧은 말을 건넨 뒤였다.


<하얀 리본>은 1차 세계대전이 왜 발생했는지 알려주는 영화야.


물론, 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라예보 사건'이다. 하지만 사라예보 사건은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을 뿐이고, 유럽 열강들은 전쟁의 명분이 될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그리고 이런 유럽 국가의 분위기가 국민들에게도 영향을 줬다면?


<하얀 리본>이 이 질문에 해답을 건네는 방식은 일반적인 영화들과는 사뭇 다르다. 많은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쉽게 주제를 전달하고자 한다. 예컨대, 대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주제를 말해주거나, 강렬한 연출과 연기를 통해 주제와 관련된 사건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키는 식이다.



이 두 가지 예시에 잘 부합하는 영화는 <기생충>이 있다. 직접적으로 대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거나, (예를 들어, 송강호분 캐릭터의 "가장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다"라는 대사) 한 부잣집의 상층과 하층을 오가는 강렬한 서사를 통해 주제를 각인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하얀 리본>은 이런 영화들과는 정반대의 주제 전달 방식을 택한다. 대사를 여러 번 들어봐도 감독이 관객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알쏭달쏭하고, 사건이 발생한 이유도 쉽게 알기 힘들다. <하얀 리본>의 주제를 알기 위해서는, 보는 관객들이 수동적으로 영화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주제를 짜 맞추고 찾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하얀 리본은 사건의 단서를 퍼즐 조각처럼 잘라낸 뒤, 관객들이 스스로 그 퍼즐을 맞추는 걸 요구하는 영화다. 사건들을 찬찬히 지켜보다 보면, 마을의 권력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가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마을의 권력자들은 아이들에게 '하얀 리본'을 달아주며 순결함, 순수함을 요구하지만, 그들은 사건의 책임 소재를 명백히 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저 사건을 무마하는 데 급급할 뿐이다. 아이들에 옷에 달린 하얀 리본은 겉으로는 때 묻지 않는 순수함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어른들의 보이지 않는 악행으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하얀 리본 속에 숨겨져 있던 '악'은 아이들 속으로 서서히 스며든다. 이기적이고 당장의 집단 이익을 우선시하는 어른 세대가 1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그 악을 물려받은 자녀 세대는 다시 2차 세계 대전의 주역이 되는 것이다.



흩어져있던 퍼즐 조각이 하나로 맞춰지는 그 순간.

이렇게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단서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긴 사유를 거친 뒤, 하나둘 맞물리기 시작해 지금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쾌감이 밀려왔다. 마치 내가 감독이 던진 수수께끼를 스스로 풀어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영화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해석하는 것’으로 감상 방식이 바뀌었다. 단순히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이야기를 다시 구성하고 의미를 찾는 과정을 즐기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하얀 리본>을 그렇게 까지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좋은 영화라고는 생각하지만,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지루하기도 했고, 기억에 남는 장면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얀 리본>은 나에게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의 재미, 그리고 사유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줬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나에게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미지 출처 : TMDB,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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