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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별 Apr 30. 2024

저는 다 씻었습니다만...

씻은 거냐? 담갔다 뺀 거냐??



저는 다 씻었습니다만...



     

저는 분명히 씻었습니다

분명히 깨끗이 씻었습니다

깨끗이 비누로 씻었습니다만    

 

제 눈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엄마 눈에는 보이는 것을

     

빨리 씻고 나오라고 해서

진짜 빨리 씻고 나간 것을

     

물 낭비 하지 마라 해서

정말 낭비 없이 씻은 것을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정말 씻었답니다




'같은 부모 같은 뱃속에서 나온 자식인데 왜 저렇게 다르냐??'라는 말을 왜 하는지, 남매를 키우면 키울수록 느끼고 있다. 성격도 그렇고, 취향도 그렇고, 씻는 습관도 참 다르다. 우리 집 두 놈 중 한 놈은 너무 빨리 끝나고, 한 놈은 너무 늦게 끝난다. 즉 중. 간. 이 없다.ㅎㅎ


  등교 전에 양치질을 패스하고 싶어 질질 끄는 건 똑같지만, 저녁에 집에 와서 씻을 때는 속도 차이가 너무 난다. 둘째인 딸내미는 샤워하는 걸 좋아한다. 원래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씻을 때도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놀면서 씻는 걸 좋아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샤워할 때 욕실 문 앞에서 들어보면 노랫소리도 들리고 말소리도 들린다. 어쩔 땐, 세면대 유리에 잔뜩 그린 그림과 글씨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저런 놀이를 하면서 그렇게 씻다 보면 1시간 가까이 될 때도 있어, 난 열심히 반찬 준비를 하다 시계를 보고 빨리 마무리하고 나오라고 소리 지른다. 딸내미는 시간은 오래 걸려도 스스로 꼼꼼히 잘 씻고 거울을 보며 로션도 잘 바르기 때문에 그나마 나은 편이다. 다만 물을 많이 쓰고 학습지 선생님과 통화시간에 늦을 때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반면에 첫째인 아들은 너~~~ 무 빠르다. 뭐 대부분의 아들들이 그렇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일단 씻는 것을 귀찮아한다. 엄마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씻어야 하면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가지만, 어느새 잠옷을 입고 앉아 있다. 분명히 모든 곳을 다 씻고 나올 시간이 안 되는 데 말이다. 그러면 나는 또 질문에 들어간다. 세수는 했냐? 발은 씻었냐? 로션을 발랐냐? 다 했다고 하면 2차 질문이 들어간다. 귀 뒤랑 목은 씻었냐? 발가락 사이사이랑 뒤꿈치는 꼼꼼히 씻었냐? 이렇게까지 묻고 싶지 않지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발을 씻었다면서 발을 그냥 물에 담갔다 빼고 나온 시간인데 다 씻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한 번씩 놀라운 광경을 목. 격. 한다. 아들의 뒤꿈치가 귀 뒤쪽이 탄 것 마냥 새까맣게 되어 있을 것을. 처음 그것을 발견했을 때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릴 때는 항상 내 손으로 뽀독뽀독 씻겼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었는데,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혼자 잘 씻는다 하여 믿고 맡기고 나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 설렁설렁 씻고 나왔다는 증거를 그렇게 한 번 발견하고 나서는, 씻고 나와도 의심의 눈초리 없앨 수 없었다. 하겠다는 대답은 참 잘하는데 왜 그럴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침마다 등교 전에 머리는 잘 감는다. 헤어스타일을 살리기 위해서인가 보다. 한 번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얼굴에 울긋불긋 솟아난 여드름 때문에, 나에게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깨끗이 씻고 알로에와 케어 연고도 바르라고 알려 주니 그건 또 열심히 잘한다. 건조해서 갈라지는 입술 때문에 립글로스 잘 발라야 한다고 일러주니, 그것도 잘 지키고 있다. 즉, 밖으로 보이는 은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는 사춘기 소년이다. 이젠 잘 안 보이는 곳도 좀 꼼꼼히 신경을 쓰는 깔끔한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비록 덜 깔끔해도 나에겐 아. 직. 은. 귀여운 아들이지만, 그 모습이 친구들에겐 더. 러. 워. 보이거나 한순간에 확 깰 수 있는 치부가 되기 때문이다.


  항상 본인이 잘생겼다며 자기애가 넘치는 아들아~ 얼굴만 신경 쓰지 말고 몸도 좀 신경 씁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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