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워킹맘이다. 그것만 해도 바쁘지만 짬을 내어 취미도 즐기고 종교활동도 한다. 그래서 내가 매일 혹은 주 단위, 월 단위로 해야 할 일은 아주 다양하다. 평일엔 매일 출근을 해서 맡은 분야의 일을 해내야 하고, 가정에서는 엄마로서 두 아이와 남편을 챙겨야 한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하고 가끔씩 대회에도 참가하며, 이렇게 글을 쓰거나 글 쓰는 수업을 듣기고 한다. 토요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하고, 자모회 총무로서의 일도 하고 있다. 그중에서 자잘한 취미활동은 내 의지에 따라 가끔 안 하고 쉬어도 크게 상관없지만, 꼭 해야 하는 역할은 내가 피곤하다거나 하기 싫다고 무시할 수가 없다. 내가 못 하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더라도 일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아이들도 학교생활을 하면서부터 역할이 하나둘씩 늘어나게 된다. 일단 가정에서 작은 집안일을 한 두 개씩 가르쳐 역할 분담을 한다. 우리 집의 경우에는 식사 후 그릇 정리와 고양이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각 반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아이들의 역할이 대부분 정해져 있다. 어느 구역 청소하기부터 칠판에 오늘의 식단을 적는 것까지 말이다.(물론 담임선생님마다 다르겠지만...) 그리고 만약 학교에서 반장이나 회장 같은 임원을 맡게 된다면 할 일은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종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역할이 더 추가되었다. 성당에서도 가서 미사만 듣는 것이 아니라, 해당 어린이 미사가 순조롭게 돌아가기 위해 각자의 역할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는 아이의 큰 노력이 필요한 것도 있다. 많은 신자들 앞에서 미사의 해설을 하는 것이나, 신부님 곁에서 복사를 서는 것은 연습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 모든 역할들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저 시키니까 하는 일이긴 하지만, 맡은 바 임무를 무사히 끝내고 나면 어른들의 칭찬을 들으면서 은연중에 뿌듯함 혹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둘째 아이가 첫 '대복사'를 하게 되었다. 두 명의 복사 중에서도 좀 더 어려운 임무라 할 수 있겠다. 하기 전에 '나 잘 모르는데...' 하며 걱정하는 듯하는 모습을 보여, 맘이 쓰인 엄마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불어넣어주긴 했었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실전에서는 하나도 긴장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무사히 일을 잘 수행하였다. 미사가 끝나고 아이에게 너무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우리는 눈치채지 못한 사소한 실수를 한 것에 속상해했다. 하기 싫어하면서도 이왕 할 때는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나 보다. 괜찮다고 위로해 주니 뒤이어 할머니는 보러 온다고 하고 왜 안 왔으며, 아빠는 또 왜 안 왔냐고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겐 사진은 찍었냐며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자기 딴에는 꽤 큰 과업을 해낸 것인데 왜 가족들이 많이 와서 칭찬 안 해주는지 섭섭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귀여워, 아이가 좋아하는 맛있는 저녁과 간식을 먹는 것으로 무마하였다. 이렇게 뭐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볼 때, 다시금 아이를 키우는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