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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l 03. 2019

이 저열함을 버릴 순 없을까

비교하지 않고 만족하기


  지난 주말 경사스러운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도준이의 키를 쟀는데 85cm 정도 되었다. 19개월 남자아이 평균 키 83.2cm 보다 약간 더 크게 나온 것이다.

 

  도준이는 백일 막 지났을 때 편도선염을 앓아서 한달 새 두번 병원 신세를 졌다. 영국에서 입원까지 시킬 정도면 꽤나 심각했다는 뜻이다. 아픈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잘 못자서 많이 못 컸던 것 같다. 태어날 땐 키랑 몸무게가 평균 정도였는데 아프고 난 다음에는 하위 20퍼센트까지 떨어졌었다. 제일 많이 자랄 시기에 아이가 아파서 엄마아빠가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간 평균을 따라잡기 위해 엄마가 식사시간마다 아이와 사투를 벌여 왔다. 몸무게는 안 재봐서 모르지만 키가 평균 이상으로 나온 것은 아픈 이후로 처음이다. 안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근데 그러고 나서 조금 서글퍼졌다. 왜 우리의 기준은 항상 평균*일까. 도준이보다 키가 작은 사람의 수가 큰 사람의 수보다 더 많아지는게 왜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돌아보면 늘 그래왔던 것 같다. 내가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나보다 편이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상대적 우월감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었다. 내 앞뒤에 몇명이나 서있는지 세보고 그것으로 만족을 얻는 것은 사실 아주 저열한 행동이다. 다른이의 삶을 깔아뭉게야만 내가 높아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하면서 제일 많이 고민했던 것도 나 스스로의 기준을 만드는 문제였다. 어쩌다 보니 굉장히 좋은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 이게 나에게 자랑이 될 수 없는게 내 실력은 이 학교에서 살아남기엔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내내 똑똑한데 성실하기까지 한 동료들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하곤 했다.


  다행히 박사는 상대평가로 몇 등 안에 들어야 받는게 아니었다. 내가 고른 분야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만 하면 학위는 받을 수 있다. 박사학위증서에는 성적도 기록 안된다. 그래서 내 이해력과 기억력, 영어 실력과 성실성에 한계를 느낄 때도 좌절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했다. 남들 잘 안하는 분야, 소위 블루오션을 선택해서 나도 모르는건 남도 모른다는 정신으로 아무말이나 지어냈다 (물론 근거는 늘 달았다만). 내가 세운 기준에만 못 미치지 않게 논문을 써냈고, 다행히 시험관들의 기준도 충족시켜서 학위는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연습은 꽤나 값진 경험이었다. 이 경험은 진로를 선택할 때도 도움이 되었다. 내 나이 대 다른 사람이 받는 연봉이나 생활수준으로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이 결정되었다면, 아마 남아공에 오는 건 꿈도 못 꿨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비교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때때로 나보다 못한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우월감이 마음 한켠을 은밀히 채워주기도 한다. 도준이 키우면서 특히 더 그렇게 된다. 키도 그렇지만 말이나 행동도 또래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빠른지 느린지 생각하게 된다. 빠르면 우쭐해지고 느리면 불안해지는 그런 마음... 나는 여전히 그 저열함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비교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엔 끝이 없을 듯하다.

 


*주. 정확하게 말하면 평균(mean)이 아니라 중위값 (median)인데 정규분포라 가정하고 넘어가자.


** 깨알 모교자랑. 2019 QS 세계대학순위 기준 LSE가 사회과학 분야 2위 기록. 1위는 하버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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