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은 그냥 그랬다. 나름 동물 종류를 다양하게 뒀는데 남아공에서 워낙 흔하게 봤던 애들이라 별 감흥이 없었다(과한 남아공 부심). 먹이주기 체험이라고 토끼, 미어캣, 잉꼬, 거북이 같은 애들한테 당근과 밀웜을 조금씩 먹여주는 게 있었다. 기린, 독수리, 코끼리한테 먹이를 주는 남아공 동물원과 비교를 안 할 수 없었다.
여하튼 소소한 배식 체험을 마치고 이제 우리 점심 먹을 데를 찾는데, 동물원이 워낙 외진 동네에 있어서 마땅한 식당이 안 나왔다. 적당히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곳으로 이동했다.
네비를 따라가니 전형적인 시골 마을 풍경 속 족히 20년은 돼 보이는 허름한 식당이 나온다. 잘못 왔다 싶었지만, 시간도 늦었고 근처에 더 나은 옵션도 딱히 없을 것 같아 일단 들어가 봤다.
그래도 안에 손님이 몇 팀 있다. 앉아서 주문하고 보니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사장님이 손님들과 과하게 허물없어 보인다. 우리 뒤에 중학생쯤 된 딸과 함께 들어온 가족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사장님께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둘 간에 "와 못본새 많이 컸네, 몇 살이지?" 등의 스몰토크가 오간다. 먼저 와서 먹던 팀도 그 가족과 구면인지 어서 오라고 알은체를 한다. 거의 동네반상회 분위기다.
이윽고 주문한 보쌈이 나와서 한점 들어보니 이것도 예사롭지 않다. 잡내도 전혀 없고 삶기도 야들야들 딱 적당하다. 살코기와 비계의 비율도 예술이다. 같이 나온 무김치는 시원하고 아삭한 게 그 자체로도 맛있고 보쌈과 궁합도 최고다. 바지락칼국수와 들깨수제비도 먹으면서 감탄이 계속 나왔다. 역대급이란 말을 여러차례 했다. 혹시 배가 고파서 맛있나 싶었는데, 우리집 공식 맛집감별사 도준이도 잘 먹는 거 보니 찐 맛집이 분명하다(배고파도 맛없으면 안 먹음...).
정신없이 먹는 와중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 이번엔 대학생 네명이 들어오는데 역시나 여자 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고등학생 때 자주 오던 친구들인가 보다. 사장님이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고 타박 아닌 타박을 한다. 졸업한 지 10년 넘은 학생들도 계속 온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동네에 터 잡은 지 오래인 게 맞았나 보다.
양도 넉넉하고 가격도 저렴한데 맛까지 있으니 사람들이 안 올리가 없다. 회사 근처면 일주일에 한두번은 왔을 만큼 괜찮다. 세종시에서 일인당 만원 안 주고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는데 여긴 일반칼국수 6천원, 들깨칼국수/수제비 6천5백원이다. 보쌈도 맛과 양에 비해 너무 싸다.
다이어트 중임을 망각한 채 양껏 먹고 나오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동네 맛집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막입이라 이 집이 블루리본 급 식당인지 판별할 수 없지만, 적어도 동네 사람들에게 부담없이 맛좋은 식사를 제공하는 건 분명해 보였다. 학생들부터 가족들까지 생각날 때마다 편하게 오가고, 누구나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랑방 역할도 한다. 게다가 나 같은 외지인들에게도 기억에 남을만한 한끼를 선사하니, 이 식당이 제 존재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속은 텅텅 비었는데 무리하게 유명세를 좇느니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동네 맛집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 실력은 기본일 테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밥 한끼 먹고 왜이리 말이 많냐 싶을텐데, 내가 원래 그렇다. 오늘의 일기 끝.
덧. 동물원에 '아프리카가시거북'이 있었는데 남아공 살 때 동네 공원에서 보던 애랑 똑같이 생겨서 반가웠음. (남아공 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