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가장 취약한 사람에게 가장 큰 짐을 지운다. "집에 머물라"는 말이 애초에 적용되지 않는 사람들. 홈리스.
간간이 있던 일자리는 씨가 마르고 생명줄이던 무료 급식소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모이지 말라"지만 역사의 처마 밑에 모여 온기라도 나누지 않으면 쌀쌀한 초봄의 밤을 어떻게 지낼까.
그들의 사정을 외면할 만큼 뻔뻔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내게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보고서에 "노숙인들 감염 방지 대책 세워라", "감염에 취약한 노숙인 시설에 백신 먼저 공급해라" 등등 들리지 않을 말을 한두줄 넣을 뿐이다. 당연히 부채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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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르게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들도 있다. 대전에 사는 친구 목사가, 카이스트 앞에서 카레집을 하는 사장님과 의기투합하여 [밤, 한 끼]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정기적으로 대전역 노숙인들에게 도시락, 간식거리, 마스크 등을 나눠주는 모임이다. 손이라도 빌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 어제 나도 대전역에 잠시 다녀왔다.
다들 고맙다며 준비해온 식사를 받아가셨지만 고민은 더 깊어졌다. 이분들에게 이 한 끼가 무슨 의미일까.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고, 코로나가 가도 이분들의 삶이 나아질 리 만무하다. 나는 이래나 저래나 이방인이다. 하루치 식사를 대접했다고 뿌듯해하는 내 모습이 오히려 부끄럽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방역과 백시네이션 상황에 선거철이 겹치며 수많은 말들이 오간다. 그런데 이런 날엔 도저히 말과 글의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우리의 말이 이 노숙인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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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힘들어서 식당문을 닫으려 했다는 카레집 사장님은 이 모임을 계기로 다시 힘을 내셨다. 재료비만 받고 4~50인분 밥을 하면서도 너무 신이 나 힘든 줄을 모르신단다.
"내가 밥집을 하는데 주변에 굶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죠."
노숙인 지원으로 시작해서 주위 보육원에도 식사 쿠폰을 나눠주고, 만나는 다른 사장님마다 같이 하자고, 너무 행복하다고 권하고 계신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냥, 그 말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어차피 내가 다할 수는 없다. 자기 형편대로, 재능대로, 스스로 행복하고 스스로 떳떳한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다 멋들어진 성과가 나면 좋겠지만 또 아니면 어쩌겠나. 나는 영웅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