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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Dec 18. 2019

다 컸네

언제쯤 진짜 다 컸다고 할 수 있을까

 도준이가 점점 할 줄 아는 게 많아진다. 혼자 노는 시간도 꽤 늘고 의사표현도 제법 정확하게 한다. 이제 간단한 심부름도 곧잘 하는 걸 보면 조금씩 크고 있긴 한가보다. 이렇게 어느새 부쩍 커버린 아이를 보고 있으면 "다 컸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난번엔 차를 타고 한참 가고 있는데 뒤에 탄 도준이가 조용하다. 멈췄을 때 돌아보니 혼자서 열심히 책을 뒤적거리고 있다. 운전시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빽빽거려서 엄마 아빠가 계속 놀아줘야 했는데 혼자 조용히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대견했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우리 도준이 다 컸네."라는 말을 내뱉었다. 


 오늘은 밖에 나가서 놀려고 불렀더니 쪼르르 와서 혼자 신발을 신으려 애를 쓴다. 보통 조금 해보다가 포기하고 "아빠. 같이. 도와주세요오." 하는데 오늘은 낑낑 대며 혼자하길 멈추지 않는다. 결국은 자기가 신발을 신어 내고는 아빠를 향해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보고 어김없이 "우리 도준이 신발도 혼자 신고 다 컸네."라는 말이 나왔다. 


 사실은 전혀 다 큰 게 아닌데 왜이리 쉽게 "다 컸네"라는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이나 주변 분들을 봐도 아기들이 조금만 새로운 걸 해내면 다 컸다고 과잉 격려를 남발하는 걸 봐선 나만 오버하는 건 아닌 듯하다. 


 생각해보면 부모의 역할이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이 말을 하는 것 같다. 목을 한참 못 가누다 뻣뻣이 세우기 시작했을 때, 누워만 있다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 일어설 때, 걸을 때, 말을 할 때, 놀이터에서 혼자 놀 때... 부모가 해줘야 했던 걸 아기가 스스로 하기 시작하면 하나의 고비를 넘겼다는 마음이 든다. 적어도 그 한 부분에 대해선 졸업한 것이니 다 컸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도준이가 다 컸다는 말을 얼마나 더 들어야 진짜 다 커서 가정과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해낼 수 있을까. 특정 나이가 되면, 학교를 졸업하면, 직장을 구하면, 자기 가정을 꾸리면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 성인으로서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게 될까. 


 내 경우를 두고 보면 난 아직도 먼 것 같다. 결혼해서 아기도 낳고 나이도 꽤 들었는데 스스로 다 컸는지 물어보면 그렇다 답할 자신이 없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고 당장 앞으로의 진로도 확실치가 않다. 이 나이쯤 되면 앞으로 뭐하고 살지 왜 그걸 하고 싶은지 목표를 위해 뭘 준비해야 할지 모든 게 명확해질 줄 알았는데 어느 하나 분명한 게 없다. 


 그래도 스스로 "다 컸다"라고 생각한 순간이 없진 않았다. 수능 끝나고 대학에 입학할 때, 대학을 마치고 유학길에 오를 때, 일 시작하며 독립할 때, 결혼할 때, 아기 태어날 때, 박사를 마칠 때... 한고비 한고비 넘길 때마다 이제 내 삶을 내가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이뤄낸 작은 성취에 도취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어쭙잖은 충고를 날리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성취의 기쁨은 잠깐이고 변변치 않은 현실을 보면 다시 내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단적인 예로 한국 돌아간다 해도 머물 집 하나 없다.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모아둔 돈은 없어서 당분간은 부모님 집에 얹혀살아야 한다. 이래선 아직 다 컸다고 말할 수가 없다. 


...


 우리 삶이라는 게 결국 이런 상태의 지속이지 않을까 싶다. 고작 신발을 혼자 신는 행위 하나에 다 컸다는 칭찬을 남발하며 도준이를 격려하듯, 별거 아니지만 하나하나의 성취를 두고 스스로, 또 서로 축하하고 위로하며 힘을 얻은 후 또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게 아닐까. 


 다 컸다는 말을 아낄 필요도 없지만 그 말을 듣고 실제로 다 큰 마냥 우쭐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성장에 끝은 없다는 겸손함으로 매일매일 한 계단 씩 오르다 보면 어느새 '좀 크긴 했네' 느껴질 날이 오지 않을까. 과거이 업적은 과거에 남겨두고 오늘 또 새로운 성장을 이뤄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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