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뜨내기인생 스토리
그때 시골의 삶은 대개가 그랬다. 세상이 흔들리면 따라 흔들리고 그러다 고요가 찾아오면 심정(心情)은 다시 자리를 잡고 잠잠해진다. 흔들림은 대중할 수가 없었고 흔들림에 부딪치면 아픔이 부딪침 만큼 돌아오는 게 삶이었다.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흔들림에 순응하고 흔들림과 함께 살아가는 순리(順理)를 배워 오랜 세월 익혀왔다.
관우의 삶이 언제 어디서 시작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처음에는 한 사나흘에 한 번꼴로 집에 와서 이것저것 집안일을 도와주었다. 아버지가 출근하고 나면 그가 부스스한 몰골을 하고 찾아와서 어머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집안에 이것저것 허드렛일을 했다. 일거리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도 모르는 일들을 하면서 해가 지면 저녁을 먹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는 늘상 혼자였다. 그렇다고 외톨이는 아니었다. 이 집 저 집 다니며 다들 아는척하고 지냈다. 동네에 일이 생기면 달려가서 거들어주었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궂은일에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농사철에 이 집 저 집 다니며 모내기나 김매기로 일손을 보태고 끼니를 때웠다. 누구에게도 품삯이나 새경을 요구할 형편은 아니었다.
당시는 그랬다. 6.25 동난(動亂)을 겪은 뒤라 시골에는 밥을 구걸하는 뜨내기들이 많았다. 끼니때만 되면 찾아와 대문옆에 앉아 밥을 얻어먹었다. 밥과 반찬을 박바가지에 받아 갖고 가는 걸인(乞人)들도 많았다. 동네는 인심이 좋아 걸인들을 야박(野薄) 하게 내치지는 않았으나, 바가지에는 기껏해야 꽁보리밥에 시어 빠진 무김치 쪼가리가 전부였다. 냇가에서 딸린 식구들과 구걸한 밥을 같이 먹었다. 가끔씩 이들은 동네에 새로 들어온 걸인들에게 텃세를 부리며 난동을 피울 때도 있었다.
관우가 처음에 걸인이었는지는 분명치가 않았다. 관우가 동네사람들과 곰살갑게 지내려고 애를 쓰는 것은 그가 의지할 곳이 없는 뜨내기였고 동네에는 근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관우는 성(姓)이 손(孫) 가라고 하고 다녔다. 어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 동네에는 손(孫)씨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어머니의 친정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여름철 저녁에 교회에서 십계(十戒) 라는 영화를 보았다. 세상에 나와 처음 본 영화였다. 영화에 나온 인물들이 대머리 율브린너와 찰톤 헤스톤이었음을 커서 알았다. 관우 얼굴이 찰톤 헤스톤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이색적으로 생겼다고 했다. 십계(十戒) 영화는 신기했고 시골사람들은 영화와 실제을 구분하지 못했다.
관우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얼굴은 항시 체념(諦念)한 듯한 엷은 웃음을 띠고 있었으나 일할 때는 옹골찼고 허투루 일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관우에게 일을 맡기면 모두가 마음을 놓았다. 마무리는 마뜩하고 뒤끝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관우를 아까운 사람이라고 했다. 마음 둘 곳이 없어 그런지 허(虛) 해 보인다고도 했다.
누가 관우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라고 물으면 그의 대답은 맨날 똑같았다.
" 일성 그렇지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