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1>

선택의 계절

by Morpheus

1970년대 초, 정치적으로는 엄혹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각자의 생각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나 다들 가슴에 담고 지냈다.


정치 얘기를 빼면 기업은 에너지가 넘쳤고 활발했다. 삶은 힘들었어도 힘듦을 돌아가지 않았다. 부딪치고 깨져도 털고 일어서 새벽을 맞이했다.


길은 선배들이 정했고 신입은 그 길을 따라갔다. 선배라 해도 기껏 1~2년 앞서 입사한 직원들이었다. 선배들의 말은 법이었고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은 없었다.


선택은 선배들이 누리는 재량권이었고 그 재량권을 향유하기 위해 2~3년의 경과가 필요했다. 좋은 선배를 만난다는 것은 행운에 속하고 회사생활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했다.


룰(Rule)은 듬성했고 분위기는 강했다.




연초가 되면 건물입구의 홀(Hall) 벽에는 인사발령의 공고문이 게시되었다. 멀리서도 볼 수 있게 높이 부착되었다. 인사발령의 요약본이다. 세부 발령은 각 부서로 갱지(更紙)에 프린트된 문서가 배포되었다.


부서장이 열람한 후에야 각 과별로 돌아가며 회람되었다. 신입사원들은 인사발령 문서의 접근이 어려웠고 선배들의 전언으로 주로 듣게 되었다.




당시의 대기업들은 분기별로도 모집이 있었고 그 규모도 컸다. 입사 후 이직률도 높았다. 취업하는 사람들에게 그만큼 선택할 수 있는 여지 많았다는 얘기다.


이직은 연초가 많았다. 특히 인사발령이 있은 후 2~3일은 혼란스러웠다. 하루 이틀의 결근이 많았다. 인사발령에 제외된 사람들이 선택을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추스르고 출근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따랐고 떠나는 사람들은 가슴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승진과 영전한 사람들은 애써 말을 아꼈다.


인사발령 중에 해외지점 발령은 임직원들의 관심사였다. 특히 미주와 구라파 지역으로 발령받은 직원들은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다.


인사발령이 있은 후 며칠간은 이곳저곳 불려 다니며 축하주와 송별주 얻어 마시기에 바빴다. 하루 저녁에도 한 두어 곳에 겹치기 술자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 차로 끝나는 술자리는 없었고 통금시간이 아쉬웠다.


다음 날 통근버스 안은 전날 마신 덜 깬 시큼한 술냄새가 난방 열기에 엉켜 버스 안을 돌아다녔다.


축하를 받는 당사자들의 그 달 노란 월급봉투는 헐렁했고 아내들은 허리띠를 동여매어야 했다. 그래도 즐거워했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게 처음 가는 길이었다. 회사는 해마다 아니 분기마다 성장했고 해외지점이 일 년에도 몇 개씩 늘어났다. 해마다 신년회에 회장님은 높은 단상에서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호소했다.


언제 허리띠를 푼다라는 신년사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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