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랑, 나의 모든 걸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 번개가 내리 꽂히듯 번쩍하고 눈을 뜨게 만드는 사랑. 누구나 그런 사랑을 꿈꾼다. 원치 않게 끝난 사랑으로 인해 혹독한 가슴 앓이를 하면서도, 사랑의 이면에 숨어있던 서슬 퍼런 날에 놀라 뒷걸음질 치면서도 '이번엔 다를 거야!' 생각하며 이내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사랑엔 진실이 과연 있긴 한 걸까 의심을 하면서도 '사랑' 앞에선 끝없이 흔들리고야 만다. 사랑, 그것인 인간의 숙명이니깐.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것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곤 하니깐. 우리는 살면서 흔히 사랑이라 불리는 그런 감정을 몇 번이나 만나지만, '아! 정말 이 사람이 내가 찾던 진짜 사랑이야'라고 만날 때마다 생각하지만 이내 '이번에도 역시나'로 끝나버리는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기도, 또 주기도 한다. 남들은 참 쉽게 '진짜 사랑'을 찾아 '결혼'까지 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 내 사랑의 온기는 그토록 빨리 식어버리고 마는지. 내 사랑의 빛깔은 어쩜 그렇게 빠르게 바래고 마는지. 향도 금세 옅어지고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는 사랑 앞에서 속수무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엔 나의 '진실한 사랑'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니 그 희망의 끈을 놔 버릴 수 없어 꼭 붙잡고 살아간다. 그 과정이 무척 외롭고 지치지만 마음 한편에 남은 혹시 모를 기대는 도무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게의 경우 혹시 모를 작은 기대감은 '결혼'과 동시에 성취된 것으로 확정 짓는다. 결혼이 마치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 진실한 사랑을 보증해 주는 것이라도 되는 것 마냥.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주인공 찰스는 매주 지인의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하느라 바쁘다. 정작 자신의 사랑은 찾지도 못하고선. 그렇다고 해서 그 남자가 여자 한번 만나보지 못한 숙맥은 아니다. 9번 명의 여자와 사랑을 나누었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한다. 문 앞에서 찰스는 수많은 여자들의 손을 놔 버린 채 돌아서고 만다. 한 여자와 평생을 사랑하며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찰스에게 그녀들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좋아는 하지만, 호감은 가지만 사랑은 아닌. 혹시 사랑일까 싶어서 만나 보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사랑은 아닌. 그런 만남이 찰스에게 지속된다. 매주 결혼식을 가며 찰스는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언젠간 나에게도 진실한 사랑이 나타나리라..' 하지만 그런 찰스의 마음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절친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사실 그 죽음이 일어난 장소는 늘 사랑을 꿈꾸던 찰스가 첫눈에 반해버린 여자의 결혼식장이었다. '이번에도 사랑까진 아닐지도 모르지, 조금 더 만나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며 주춤거리는 사이,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 버린 그녀의 결혼식. 후회는 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씁쓸한 심정으로 그녀의 결혼식을 보던 중 일어난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모두가 슬퍼하는 가운데 치러진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찰스는 깨닫는다. 어쩌면 진실한 사랑을 기다리는 건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그 후 찰스는 예전에 만났던 여자 헨과 결혼을 하기로 한다. 물론 그 결혼은 결혼식 도중에 깨지고 말지만.(결혼은 결혼식장에 들어갈 때까지 모른다고 하더니... 결혼 중간에도 깨질 수 있다는 걸 찰스가 보여주었지... ㅡ,.ㅡ 에레, 나쁜 놈) '진실한 사랑' 이란 무엇일까. 이미 결혼까지 해 놓고서 진실한 사랑 타령을 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사랑 없는 삶을 사는 건 죽은 삶이나 다름없다는 걸 잘 알기에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은 과연 진실한 것일까, 찰스를 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법적 제도 앞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증인으로 세워둔 채 영원한 사랑을 맹세해 놓고, 때때로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사랑이 있다. 이 사랑은 영원하리라, 더없이 진실하리라 생각했기에 결혼이라는 사회적 법규 안에 스스로 들어가 놓고선, 돌연 돌아서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은 거짓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한때는 사랑했음이 분명하니깐. 단지 '지켜내는 사랑'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끝까지 상대를 끌어안아 주는 것, 현실의 풍파 속에서 깎이고 닳아 그 모양새가 처음과는 달라졌을지라도 변화된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껴안아 줄 수 있는 것, 가끔 미워지고 때때로 돌아서고 싶은 순간이 올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지켜내는 것. '버텨내는 마음'이 아닌 '품어주는 마음'으로 지속되는 사랑. 세월의 흐름으로 사랑의 어느 한 귀퉁이에 단단한 굳은살이 박혀 버리고 말았지만 그 굳은살 마저 함께 살아낸 귀한 흔적으로 여길 수 있는 그런 사랑. 결국 진실한 사랑이란, 그 어떤 조건을 떠나 상대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것이 아닐까. '그이기 때문에, 그이므로, 그라서' 영화를 보았던 바로 다음날이 남편의 생일이었다. 1년에 몇 번 없는 편지를 건네는 날이기도 하다. 영화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지라, 남편에게 편지를 쓰는데 마음이 괜스레 울렁이고 아릿해졌다. 죽은 가레스의 장례식 장에서 참담한 심정으로 조사했던 매튜가 읊은 시, 그 어떤 사랑의 세레나데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었던 w.H 오든의 '장례식 블루스' 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랑을 찾기 위해 숱한 아픔을 겪은 찰스보다 사랑하는 친구의 마지막 순간을 아름답게 매듭짓던 매튜가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진실한 사랑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기에. 사랑하는 이와 평생을 다짐하며 기뻐하는 결혼식 장면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자 모든 걸 잃은 듯 슬퍼하던 장례식 장면에서 눈물이 났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 사람의 못난 구석, 사랑할 수 없었던 구석까지 끝내 그리워하고 마는 매튜를 보며 서로의 모든 시간, 모든 세월, 모든 사건 속에서 점점 더 굳건해지고 완전해지는 것이 진실한 사랑이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보았다. 그와 나의 사랑이 끝까지 진실하기를. 그 진실 안에는 서로를 향한 무한의 노력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어내는 마음이, 그의 존재 자체에 모든 의미가 깃들어 있음을 기억하며 살리라.
장례식 블루스 - W.H. 오든 모든 시계를 멈춰라, 전화를 끊어라, 기름진 뼈다귀를 물려 개가 못 짖게 하라. 피아노들을 침묵하게 하고 천을 두른 북을 쳐 관이 들어오게 하라, 조문객들을 들여보내라. 비행기를 하늘에 띄워 신음하며 돌게 하고, 그가 죽었다는 메시지를 하늘에 휘갈기게 하라. 거리의 비둘기들 하얀 목에 검은 상장(상장)을 두르고, 교통경찰에게는 검은 면장갑을 끼게 하라. 그는 나의 동쪽이고 서쪽이며 남쪽이고 북쪽이었다, 나의 평일의 생활이자 일요일의 휴식이었고,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대화, 나의 노래였다. 우리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으나, 내가 틀렸다. 별들은 이제 필요 없다, 모두 다 꺼버려라. 달을 싸버리고 해를 철거해라, 바다를 쏟아버리고 숲을 쓸어 버려라, 이제는 그 무엇도 아무 소용이 벗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