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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민 May 08. 2020

 순수하게, 따스하게.


독립을 해서 살고 있는 여동생이  친정집에 다녀왔단다. 아이를 낳기 전엔 내가 몇 번이나 친정집에 들릴 동안 한 번을 잘 오지 않던 녀석이 요즘엔 친정으로 꽤 자주 가는 모양이다. 아이 둘을 낳고 나선 친정에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잘 가지 못하는 나 대신 딸 노릇을 하러 가는 것일 거다. 덕분에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질 수 있었다.

내 동생은 알까. 내가 ‘첫째’의 역할을 해 내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어떻게든 부모님에게 힘을 보태주고자 했던 내 입장을.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독립을 하고, 차를 사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동생을 보며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 모습에 놀랍기도, 부럽기도, 또 기특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하고 싶은 건 거리낌 없이 다 하는 동생이 얄밉기도 했다. ‘넌 참 속이 편하겠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서!’라며.

역시 첫째와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이성적인 언니와 감성적인 동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센스엔센시빌리티를 보면서 도무지 남 일 같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동생은 나의 말에 반기를 들지 모르겠다. 독립도, 차도, 해외여행도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쟁을 벌여야 했는지 아냐고.(실제로 엄마와 지긋지긋한 싸움에서 이겨야만 했다.)

본인에게도 가족은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나의 삶도 중요하지 않느냐고.

언니와 나는 그저 성격이 다를 뿐이라고. 자신이 둘째이기 때문에 언니 다른 삶을 산 것은 아니라고! 본인 역시 가족을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여태껏 내가 첫째라서 가족을 많이 위한다고 생각했다. 동생에겐 그런 책임감 같은 것은 없을 거라고.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꼭 그렇지마는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다른 성격 탓에 눈에 보이는 태도가 같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와 백화점엘 가면 나는 엄마가 마음에 드는 것을 사 주는 것으로 쇼핑을 끝낸다. 내가 낼 수 있는 돈 안에서. 최대한 엄마의 돈을 쓰지 않게 하려고. 하지만 동생은 그렇지 않다. 내가 사주는 것보다 두 배로 비싼 물건을 사주면서 엄마도 나에게 무언가를 선물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자신의 돈으로 사 주는 거랑 엄마에게 선물을 받는 거랑은 기분이 다른 문제라나. 그렇게 둘이 쇼핑을 다녀오면 두 사람 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나온다.

엄마는 첫째 딸의 묵묵함과 둘째 딸의 솔직함 사이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엇을 생각하였든 어쨌든 딸과 함께 하는 쇼핑은 즐겁다는 생각은 확실히 하였을거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동생은 동생의 방식으로 그렇게 자식 노릇을 해 오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언니의 권위로 동생을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우린 누가 누굴 돌보고 말 고하는 사이가 아니었던 거다.

꼴랑 두 해 일찍 태어나놓고 엄마 노릇이라도 해야 한다고 착각했으니, 참으로 우습다. 아니나 다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용돈을 받으면 늘 받는 즉시 다 쓰고 손가락을 빨고 있는 나에게 돈을 쥐여주었던 건 동생이었으며, 언니의 발칙한 연애를 눈감아 준 것도 동생이었고, 엄마랑 얼굴 붉히며 싸우고 있는 나에게 ‘엄마 성격 모르나? 그냥 못 들은 척하지 그랬노.’라고 달래주었던 것 역시 동생이었다.

언니로 모든 걸 감내하며 살았다는 생각은 순전히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철밥통 직장을 다니는 덕에 조카 선물에 늘 후하고, 가끔 해외여행을 갈 때면 ‘필요한 것 없느냐’고 묻는 동생. 애들이랑 놀아주러 오라고 sos를 치면 한달음에 거제까지 내려와 주는데 이젠 동생이라기보단 친구에 가깝다. 아니 친구라기보단 동지라고 해야 하나.


"너네는 자매면서 되게 친하진 않네?" 용건이 없으면 연락도 잘 하지 않는 우리 자매를 보고 남편은 이야기한다.

"필요할 땐 다 연락해."

단짝 친구처럼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진 않지만 그 어떤 친구보다 서로를 진하게 응원한다.

서로의 기쁨에 부러움 하나 없이 순수하게 기뻐해 주고, 슬픈 일엔 말로 건네는 위로가 아닌 실질적인 도움을 애타게 찾는다.

사이즈 착오로 반품해야 옷이 있으면 반품 대신 서로에게 내어주고, 남 주긴 아까워 들고 있던 물건 역시 오랜만에 만나는 날 보따리장수처럼 풀어서 넘겨준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이 삶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가끔 엄마나 아빠의 뒷담화를 아무렇지 않게 같이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이 세상에 동생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나의 두 아들은 이다음에 자라서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줄까. 문득 궁금해진다. 같은 뱃속에서 1분 차이로 나온 형제이면서 같은 날 태어난 친구이기도 한두 아이.

쌍둥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생김새도 성격도 다른 두 아이가 노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임신부터 출산까지 그 힘들었던 시간을 완전히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물론 여전히 가슴 밑까지 터진 살의 흉터와 복근 운동을 아무리 해도 변화가 없는 늘어진 뱃살을 볼 때면 말로 하지 못할 참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새로움에 거리낌 없는 첫째 덕에 겁이 많은 둘째는 혼자였으면 절대로 경험하지 않았을 일들을 숱하게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의자를 타고 싱크볼로 기어들어간다든지, 붕붕카를 끌고 오르막길에 올라간 뒤 쌩하고 내려오는 것이라든지, 큰 개에게 용감하게 걸어간다든지 하는 것들.

낯도 많이 가리고 조심성도 많은 둘째는 첫째의 용감한 말썽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난 뒤 꼭 따라 하곤 했다.

네 살이 된 요즘에도 “슬찬아, 우리 밖에 나가자”라고 물은 뒤 찬이가 앞장을 서야만 대문 밖으로 나간다. 혼자서는 절대 옆집에 발도 딛지 않지만 찬이가 옆에 있으면 아주 당당하게 옆집 대문을 쿵 하고 밀어져치는 녀석. 제 하고 싶은 것을 꼭 가져야만 되고, 제 기분대로 되지 않으면 성질부터 부리는 첫째에게 둘째는 아기 때부터 손에 쥐고 있는 장난감들을 곧잘 양보해 주곤 했는데 요즘도 똑같다. 꼭 둘째가 하고 있는 걸 달라고 떼쓰는 녀석 때문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 둘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 하고 첫째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걸 던져주곤 한다.

옆집 할머니조차 “찬이가 옹이가 갖고 놀던 걸 네 번이나 달라고 했는데 네 번 다 양보하는 녀석이 어디 있어? 착해. 쟤가 형 같아.”라고 혀를 찰 정도. 첫째에겐 “저건 진짜 고춧가루 1호야. 매워 매워. 성격이 아주 멋대로야.”라며 웃으신다. 옆집 할머니의 말처럼 둘째 역시 고춧가루였다면 우리 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집안 곳곳에 매운내가 진동을 했겠지. 쌍으로 내뿜는 고춧가루의 매운 내 때문에 내 속은 화끈화끈, 위염 같은 병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두부같이 순한 둘째 덕에 그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지만.


두 아이의 다름을 가만히 보면서 나와 내 동생의 다름이 몇 번이나 생각 난지 모른다.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지만 분명 어린 시절에도 같은 구석보단 다른 구석이 훨씬 더 많았으리라.

형제, 자매란 모름지기 정반대로 태어나는 것인가. 애 둘 이상 있는 친구에게 물어봐도 ‘같다’는 이는 하나 없는걸 보고선 내 멋대로 나의 전제에 신빙성을 부여했다.

서로 다른 넷이서 때로는 아슬하게, 또 때로는 그럴듯하게 균형을 맞추며 사는 것이 가족이 아닌가 하고.


본인의 선택은 아니었겠지만 이왕 형제로 태어난 거, 형제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면 좋겠다. 수많은 즐거움과 든든함 때로는 안정감과 같은 것. 물론 그만큼 피 터지는 싸움을 할 확률도 높겠지만.

자식을 둘 이상 가진 모든 부모들의 바람처럼 나 역시 이 두 아이의 사이의 온도가 따듯하길 바란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둘도 없는 단짝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내가 하지 못한 걸 요구할 순 없으니. 하지만 존재만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함을 느끼며 살아가면 좋겠다.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도 엄마, 아빠의 생일이 다가오면 “뭐해줄래?” 같은 질문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사이. 오랜만에 만나 밥을 한 끼 사 먹어도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그런 사이.

모든 걸 공유하지 않아도, 속을 훤히 내 보이지 않아도 나와 같은 피가 흐르는 너에게 무한한 믿음과 안정을 느끼는 그런 사이. 기쁜 일이 있을 때보단 슬픈 일이 있을 때 서로에게 먼저 연락할 수 있는 사이. 건조한 듯 각자의 인생을 살지만 바라는 것 없이 순수하게 서로의 인생을 응원할 수 있는 사이.

바라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자꾸만 요구 사항이 늘어가는 것 같아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욕구사항만 백만 스물두 가지가 될 것 같으니.

이럴 때 난, 나도 어쩔 수 없이 엄마구나.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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