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근무

by 지향

오늘은 두 달간의 제주살이를 마무리하는 날. 마지막이어도 주어진 일은 해야하기에 마지막으로 저녁근무를 하는 중이다. 오전에는 화장실과 객실 청소를 하고 바로 서귀포 시내로 나가 스태프들과 사장님께 드릴 간단한 간식과 선물을 사고 돌아와서 객실 정비를 마치고 손님 맞이를 준비중이다.


어제 본가로 보낼 택배 짐을 꾸리면서도 귀찮음만 느껴졌지,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후회 등의 감정은 못 느꼈는데 오늘 시내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 조금 더 부지런할걸.", 혹은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내가 지낸 남원읍을 돌아다녀볼걸" 하고 약간의 후회를 하는가 하면 두 달간 나에게 예기치 못한 인복과 행복을 가져다 준 제주에 고마웠다. 그리고 또 돌아올 것을 굳게 약속했다.


마지막이라고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똑같이 일하고 11시에 디너근무를 마치면 방에 들어와 얼른 샤워를 하고 스태프들과 하루 동안 있었던 작지만 재미있던 이야기를 하다 다음날 근무자를 위해 늦지 않은 시간에 잠이 든다. 나는 불을 끈 방에서도 휴대전화 밝기를 최대한 낮춰 SNS 탐색을 하다 들기싫은 잠에 마침내 들었다. 다음날 후회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자기 싫었다.


다음날이 되어 화장품 등의 짐까지 마저 캐리어와 백팩에 담고 사장님이 마지막으로 사주시는 점심식사를 기다렸다. 약속된 시간에 사장님과 만나 스태프들과 함께 남원읍내의 로빙화에서 피자와 햄버거를 먹으며 평소처럼 실없는 농담, 사장님이 겪으신 황당한 이야기를 나누고 식후엔 식당 바로 앞 윤슬이 반짝거리는 바다와 깨끗한 하늘을 보며 감탄했다. 언제 와도 사람이 없는 곳이라며 나만 오고싶다고도 했다. 이 글에 이렇게 적은 이상 방문자는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겠지만..


종종 음주를 즐기시는 사장님께는 비타민 선물을, 같이 지낸 스태프들에겐 각자에게 어울릴 서프라이즈 선물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두 달이라는 짧은 (내 기준) 기간 덕에 눈물은 안 났지만 어딘가 아련하고 씁쓸했다. 그리고 나에게 두 달여간 무탈함과 행복을 선사해준 모두에게 고마웠다. 지내는 동안 누구도 나에게 잔소리를 한 적이 없어 귀와 머리가 아프지 않아 평온했고 저녁 시간에 가로등도 드문 마을에서 밤산책을 할 때엔 별이불을 덮은 것 처럼 수많은 별을 볼 수 있어서 황홀했다. 운이 좋으면 별똥별과 반딧불이도 보았다. 높은 빌딩숲과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세워진 가로등 속에 26년간 살았던 나는 처음 보는 모습들이었다. 밤산책을 할 때 마다 "그래, 이 정도면 행복한거지" 생각했다. 또 낮에 외출했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 보는 일몰은 또 다른 치유였다. 제주의 깨끗한 하늘 덕에 저 멀리 서쪽을 보면 지고 있는 해가 뿜어내는 오묘한 주황핑크빛 하늘을 보며 걷곤 했다. 매일 봐도 울컥했다. 예전 나영석 PD님이 연출한 <윤식당> 이란 프로그램에서 윤여정 선생님이 석양이 아름답기보단 쓸쓸하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고. 당시 본방사수 했던 22살의 나는 그 말 뜻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내일이면 해는 다시 뜨지만 내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비춰준 태양이 진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가 계절이 바뀌고 1년이 지나가겠구나 싶다.


가족과의 여행까지 마치고 제주에서 돌아온 지 5일차. 10월 11일 화요일. 한글날 대체공휴일인 어제까지 혼자만의 시간이 없었던 탓에 계속 글쓰기를 미루다 오늘, 늦은 아침이자 이른 점심인 아점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나서야 노트북을 열었다. TV로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종일 들어도 안 질렸던 아니, 오히려 고요하고 따뜻한 시간을 갖는 방법을 알려준 재즈 음악을 틀었다. 다시 조용히 제주에서 지낸 여름을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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