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했던 밤들이 요즘도 가끔 떠오른다. 밖은 어두웠지만 내 주위를 감쌌던 거짓 빛들의 시간.... 푸르고, 창백하고, 예민하고, 공격적이다.
그때 갑자기 불면이 시작되고, 점점 심해지더니 마침내 단 오 분도 잠들 수 없었을 때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그 상태로 일주일이 지나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습게도 제일 먼저 턱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잠을 잘 수 없다면,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았다. 누워서 잠을 기다리다 등짝이 아프기 시작하면, 혼자 소파에 오도카니 앉아 시간을 보냈다. 눈을 감으면 영화처럼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선택은 무조건 그때일 거 같았다.
아이는 어렸고, 남편과 나는 아직 젊은 날이었다. 우리는 잠을 준비하고 있었다. 들떠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빈틈없이 채비를 하고, 깊은 잠을 향해 떠나고 있었다. 각자 제일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이에게도 가장 낙낙하고 까슬까슬한 잠옷을 입혔다. 그리고 잠잘 공간을 만들었다. 방에서 나와 일부러 거실에 초대형 이부자리를 최대한 넓게 폈다. 뭔가 일상적이지 않은 잠자리에 괜히 신난 아이가 뛰고, 나는 가족이 모두 모여 있다는 안도감으로 눕기도 전에 몸이 나른해졌다.
다음날은 아무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이었고, 오랜만에 일어날 시간을 정할 필요도 없었다. 행여 이른 햇살이 잠을 깨울까 커튼을 꽁꽁 여미고, 잠든 채 굴러다닐 만큼의 여유 공간을 확인한 다음 작정하고 우리는 재빨리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달콤했던지, 얼마나 평안했던지, 그 시간 잠은 비현실적인 천사처럼 내려와 우리 주위를 보호했다. 조용했고, 어두웠고, 적당히 서늘했다. 휴식의 시간은 완벽했다. 그렇게 실컷 자다가 깨어나면 벌써 아침이었는데, 실눈을 뜨고 아이와 남편을 확인했다. 세상모르고 아직 자는 모습에 나는 이미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억지로 다시 잠을 청했다. 절대로 깨트리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유순하기만 했던 잠이 내게서 적극적으로 달아났다. 수면제도 소용이 없었고, 그저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하루, 이틀, 사흘 나는 잠들지 못하고 고립되어 갔다. 목이 마르듯 잠이 말라 몸의 수분이 사라져 갔다.
견뎌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영원히 불면과 함께 살지 모른다고 체념했다. 그렇게 맥을 놓은 어느 날 환상처럼 날 선 내 미간을 끝도 없이 오래도록 쓸어주던 누군가의 손길을 느꼈다. 예전 우리의 깊은 잠을 지켜주던 따뜻한 시선과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안전했다. 그리고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긴장이 풀리면서 까무룩 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밤은 다시 나를 내치지 않고 부드럽게 안아주었고 치유가 시작된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기적처럼 느껴졌다.
이제 언제 그랬나 싶게 나는 잠을 잘 잔다.
밀도로 꽉 채워진 완벽한 잠을 잔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배어져 나온다. 머리는 완벽하게 지워져 텅 비어 있고, 이제 막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어 있으니 뭐라도 좀 해보라고 내게 아우성치는 느낌이다.
숙면 후 달콤하고 멍한 기분은 비어있으면서도 또 꽉 차있는 묘한 이중적인 느낌을 준다. 내게서 배어져 나오는 비릿한 잠의 냄새를 갑작스러운 샤워로 없애버리고 싶지 않다. 가만가만 움직이며 아침을 만끽한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나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신통하다. 살아가면서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거 같은 고통들도, 그렇게 힘들어했던 내가 우스워질 정도로 예기치 못하게 후루룩 사라져 버리고, 또 다른 시간이 밀려오는 것이 사람의 인생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각성의 커피 방울들이 내 몸속으로 한 방울 두 방울 스며들어 온다.
치유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