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준 것과 헤어지는 일에는 반드시 예행연습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이별은 나이를 먹어도 익숙하거나 노련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감정은 될 수 없는 모양이다.
예외 없이 늘 처음처럼 쓰리고 아리다.
만약 이별이 감지되거나, 어쩔 수 없이 앞두고 있다면, 실제의 시간으로 닥쳐오기 전 연습을 시작해야한다.
먼저 눈을 감고, 이별하는 순간을 단계적으로 떠올리는 것으로 연습을 시작한다. 주의할 점은 예측가능한 모든 상황을 계산에 두는 것이다. 예외적인 순간이나 불가피한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경우의 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별의 순간 듣게 될 가슴 아픈 말과 멀어지는 뒷모습, 서로의 상처를 숨기기 위한 어색한 침묵 등 모든 장면들을 곱씹듯 차례차례 상상해낸다. 머리 속 가상의 체험프로세스를 쉴 새 없이 돌리는 것이다.
물론 상상만으로도 슬프지만, 회피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용기 있게 마주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장면들이 마치 내가 겪은 일처럼 익숙해지면 이별을 위한 기본적인 연습은 끝이 난 셈이다. 이제 이별을 감당할 수 있다.
살아오는 동안 내게도 적지 않은 이별이 찾아왔다. 친구가 떠나고 동료가 떠나고 마음을 나눴던 사람이 떠나고 아빠가 떠나고 매일 만나던 이웃이 떠났다.
죽음처럼 완벽한 결말로 이어지는 이별이 있었는가 하면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달콤한 이별이 있었고, 억울하고 비통한 이별이 있었는가 하면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이별도 있었다.
영원한 관계는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어떤 만남에서건 이별은 결국 예정된 결말이다.
나는 유독 상처받기 싫어하는 성향이므로 이별로 인한 충격을 조절하는 연습에 성실했고 연습은 명약처럼 유용했다. 그렇게 용감하게 이별과 맞서 번번이 승리했다. 이별은 늘 추억으로 빠르게 변경되었고, 곧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했다.
하지만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이별이 몰려온다면...
그리고 그 이별이 연습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지만 인생은 예기치 못한 일들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뼈저린 실패의 경험은 예상 밖으로 평범한 아들과의 이별에서였다. 뭐 별스러운 작별도 아니었고 그저 공부를 위해 사춘기의 아이를 잠시 품에서 떼놓는 일이었는데 상실감은 깊고도 깊었다.
나는 충실히 이별에 대비해 연습했고 경우의 모든 수를 예측했다. 하지만 이 감정은 연습에 속하지 않았던 낯선 감정이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끌어안고 질척거렸던 오랜 시간은 별스럽고 본능적인 감정임을 여실히 확인했다. 나는 실패했고 이별은 유예되었다.
실패한 나는 깊은 내상을 입은 후 갑자기 깨달았다. 그것은 이별이 아니었다.
나와 아이는 분리되지 못한 채 어리 섞게 살아왔다.
올바른 이별은 올바른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법이었다.
몇 달 전 아이가 씩씩하게 군대에 갔다. 나는 멋지게 짧은 이별에 성공했고 이제 다소 긴 이별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거 같다. 분리를 거친 올바른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교훈으로는 알았으나 습득되지 않았던 것-
살아있는 동안 영원히 지킬 수 있는 관계는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어느 것은 짧게, 어느 것은 길게, 어느 것은 갑자기, 어느 것은 천천히 끊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인연이다. 이별은 회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다.
그리고 담담한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선사하기도 한다.
역시 미숙한 내게 이별은 반드시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