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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Sep 23. 2020

야!라고 불러

          

                              


‘누구든지 나랑 친구 할 사람은 그냥 야!라고 불러. 나는 그게 진짜 좋아.’

다른 이들이 보기에 자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 같다. 어른스럽고 싶어도 의식의 어느 한편이 강하게 거부하고 있어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많은 일들을 겪다 보면 무덤덤해지는 게 당연하다는데 그게 잘 안된다. 


나도 그 비슷한 무리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늘 자신이 미숙하게 느껴지고 내가 어른 행세를 해야 하는 자리가 너무 싫다. 극도의 거부감이 생겨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선배들과는 곧잘 어울리면서 후배들의 모임은 망설이게 된다. 행동이 조심스럽고 내가 뭔가 본보기가 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리고 나는 사실 어떻게 행동해야 어른다운 것인지 도통 알지 못한다. 이런 내 생각이 가만히 있어도 들통이 나는지 아직까지 나를 대놓고 어른 취급하는 곳은 없다. 어떨 땐 나이 어린 후배가 내게 언니 노릇을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는 나이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희박한 편이다. 사람들이 ‘우리 나이’라든가 ‘이 나이가 되어 보면’이라든가 하는 일반적인 나이에 대한 관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저 나이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일곱 살짜리 꼬맹이도 세상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뿐더러 팔십이 넘어 구십에 가까운 어르신도 자주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그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해탈과 어리석음의 믹스 앤 매치가 인간의 나이테인 것이다.


나는 나이를 한참 먹도록 늘 정체성에 혼란을 겪어 왔다. 뭔지 모르게 나 자신이 좋긴 한데,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너무 많다고 해야 할까? 

철 모르는 자존감과 찌질이 바보 같은 주눅 든 마음이 어울리지 않게 함께 했다. 

그러니 어떻게 모든 일에 담담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어른스러운 행동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더 능숙해져야 하는데 그리고 더 평상심이어야 하는데 늘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사람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올 때는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거듭되었다. 그렇게 좋고 싫은 티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무슨 의미로든 나에 대한 어떠한 대접도 싫다. 

선배 대접, 언니 대접, 상급자 대접..... 

어쩌다 누군가 그리 대접하려 하면 본능적으로 손사래를 치게 된다. 그냥 나를 그대로 놓아두고 싶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가끔 또래의 집단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아무개 엄마는 참 어려. 아직도 그런 게 그렇게 좋아?’라고 말할 때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진심 되묻고 싶지만, 그만 소심해져 가만히 웃는다. 

사람들은 과연 ‘아 이제 나는 어른이구나’하고 느끼는 때가 있는 것일까? 그러면 그때부터 모든 일은 다 그저 그런 것이 되어, 나이에 맞는 무게 있는 처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나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마음만 가득할 뿐인데....

내가 느끼기에 나이로 줄을 세우는 것은 가장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나이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내가 연장자가 되어가고 있는 이 상황이 몹시 당황스럽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그저 걸어가는 내 뒤에서 누군가 ‘야~’라고 불러주면 참 좋을 거 같다.

‘왜에?’라고 발랄하게 대답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어차피 모두 똑같이 어른 행세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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