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적 재경험으로서의 말하기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말해야 낫는 병

by 남정하


‘자존감’의 저자로 알려진 윤홍근이 쓴 페이스북 글을 읽었다. 상처는 언어를 사용해서 말해야 치유된다는 내용이다. 평소 자기표현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반가운 글이다. 내용은 이렇다. 우리 안에 오래 남아있는 상처는 의식적인 재경험을 통해 치유된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비슷한 상황에 반복해서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뇌가 알아서 그 고통을 치유하는 자연 치유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서 무서웠던 사람은 자신이 소리를 지름으로써 상처를 재경 험한다. 이를 통해서 공포감을 줄인다. 비슷한 상황에 습관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거나, 감정이 생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친구들과 놀고 있는 줄 알고 방문을 열었는데 혼자 저만치 떨어져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애간장이 녹고 가슴이 서늘한 느낌이 든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무서웠던 사람은 비가 오면 집에 혼자 있는 것도 힘들지만 나가서 비를 맞는 일 또한 두렵다. 부모에게 말대꾸 한마디 못하고 자란 사람은 힘을 가진 상대 앞에서 입을 열 수 없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 이런 감정이 왜 생기는지 모른 채 계속 반복해서 일이 일어나면, 엉뚱한 결과로 이어진다. 비가 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 놀겠다고 울고 보채지만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다. 어릴 때 부모에게 화났던 경험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배우자에게 튀고, 자녀에게 튄다. 사회생활을 한다면 직장 동료에게 튄다. 그런 반복되는 행동, 반응이 자신의 상처에서 시작된 문제이고 이런 재경험을 통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이란 걸 깨닫지 못한 채 반복되다가 관계가 깨지고 다시 상처를 입히고 받는다. 문제는 이런 재경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화가 난 이유가 아이의 말대꾸에서 시작됐지만 부모의 과거 어린 시절 상처에서 오는 반복되는 반응이란 걸 모를 때 힘들어진다. 무의식은 규칙이 없고, 논리가 없고,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화를 내야 할 때 내지 말아야 할 때 구분하지 못하고 비슷한 상황, 동일한 조건이 맞으면 시도 때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반복된다.






의식적 재경험으로써 말하기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상과 습관적인 반응을 자세히 살피는 관심이 필요하다. 보통 화가 나면 무조건 상대를 탓하고 비난한다. " 네가 잘못해서 엄마가 화나는 거야. 당신이 잘해봐 내가 그러나. 난 당신이 그렇게 말할 때 정말 참을 수가 없어 "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건 모두 상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은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학습한 강력한 무의식적인 학습이다. 거의 본능에 가깝다. 무의식적인 반응은 0.1초의 틈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다. 의식적 재경험에 이르기 위해서는 과거 상처 받은 경험과 현재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자신의 행동이 분리되어야 한다. 이 분리의 과정이 쉽지 않다. 대개 상담을 주고받는 동안 의식적 제 경험을 말로 풀어내게 된다. 충분히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그때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는지, 화나고 고통스러웠는지 말하고 공감받는 과정을 계속 이어간다. 자신의 상처에 대한 치유는 충분한 공감과 위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충분한 공감과 위로는 말로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면서 그때 원했던 필요, 기대, 욕구를 찾아가는 여정의 길이다. 따뜻한 온기를 담은 말을 통해 무의식에 오랫동안 갇혀있던 기억에 빛을 쪼이고 그때 말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내게 한다. 사람의 감정은 말하면 홀가분해지지만 말하지 못하고 꽁꽁 묻어두면 몇십 배로 커진다고 한다. 처음에는 연관이 전혀 없던 일들이 두서없이 말하다 보면 이어지고 연결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사소한 기억의 장소, 혹은 장면이 현재 나의 공포와 불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자꾸 떠올리고 말하다 보면 기억이 열리기 시작한다. 치유의 과정, 즉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에서 자유로와지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그래서 말로 표현하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다. 처음에는 말하는 자체가 두렵고 공포스럽다. 말하려고 하면 말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자신을 이겨내고 극복하려면 말로 표현하는 일이 필요하다. 용기가 필요하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말을 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만의 두려움에 갇혀있던 공간에서 벗어나는 힘을 얻게 된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부끄러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가 오랜 시간 동안 두려움에 갇혀 있던 자신에게 위안과 위로를 주는 일임을 경험하고 나면 치유된다. 의식적으로 힘겨웠던 상황을 떠올리면서 표현하면서 그때 어땠는지 재경 험하기 위해 자기표현에 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말뿐 아니라 그림, 노래, 연극, 사진 같은 다양한 자기표현도 효과가 있다. 글을 쓰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된다. 결국 말을 한다는 건 내가 필요한 걸 말하고 상대가 필요한 걸 듣는 목적이 있다.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자신 안에 수많은 말들이 햇빛을 쪼일 수가 없다. 말을 하기 시작한다는 건 나를 돌보기 시작한다는 말과 같다. 자세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배우자, 자녀와 상관없이 고장 난 비디오 무한 반복 되풀이하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울고, 소리 지르고, 화내고, 슬퍼하고,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왜 그렇게 울면서 소리 지르는지 다가가서 말 걸어 물어보면 대답할 것이다. 말 붙여주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고 조금만 더 기다리게 했으면 미쳐버렸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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