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솔직하게 말하려면 어떻게 말할까?
처음에 도대체 욕구가 뭐야? 존중, 배려, 공감, 자유... 이런 것들이 내 삶에 있기나 한 이야기인지 의아해한다. 당황스러워한다. 참여하길 주저하고 불편한 내색을 내 비친다. 잠시 그런 불편한 마음이 드는 자신을 살피면서 내킬 때 참여하도록 안심을 시킨다. 음악을 따라 걷다가 자신의 욕구와 만나는 사람들 얼굴이 하나 둘 밝아지기 시작하고 옆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표정이 살아난다. 목소리에 활기가 생기고 목소리 톤이 한두 볼륨 커진다. 다르게 뭘 하지 않았는데 끝 날 무렵이 되자 옆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는 시끌 시끌하다. 사람들 얼굴에 홍조가 띠어지고 즐거운 영화 한 편을 감상하고 나오는 사람들처럼 행복하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욕구와 만나고 그걸 옆 사람에게 표현한 것뿐인데 불편한 감정은 사라지고 기쁨이 가득하다. 요술 같다.
워크숍에서 만난 할머니 이야기이다. 자신에게 소중하고, 필요한 욕구를 바닥에 펼쳐놓고 하나하나 살피면서 마음이 와 닿는 욕구를 찾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우리는 해야 할 일, 해야만 하는 일에만 온 신경을 쓰며 사느라 자신이 뭘 원하는지 살필 겨를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지, 뭘 원하는지 물으면 말 문이 막힌다. 한 번도 원하는 게 뭔지 물어보지 않고 지낸다. 조용하게 음악을 들르면서 천천히 발 가는 대로 마음의 욕구와 만난다. 몸과 마음에 와 닿는 욕구를 만나면 잠시 눈을 감고 그 욕구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필요로 하는지, 원하는지 머물러 본다. 옆 사람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원하는 것에 대해 나눈다. 할머니는 한참 말없이 서 있더니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흐느낌으로 이어져 한참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할머니가 멈춰 선 욕구는 자유, 홀가분함이었다. 끝날 무렵 소감을 묻자 말 문이 막혀 말을 잇지 못한다. 자신의 욕구와 만나는 활동을 끝마치고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할머니는 감정을 추스르고 입을 뗀다. " 아무 생각 없었어요.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괜히 참여했나 후회가 되기도 했어요. 근데 욕구( 원하는 것) 앞에 서니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동안 억누르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저를 위해서 아무것도 바랄 수 없었어요. 다 제 잘못이었다고 자책하면서 살았어요. 마음에서 뭘 원하는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그 순간 제가 너무 가엽고 불쌍했어요. 애쓰면서 사느라 힘들어하는 저와 만날 수 있었어요. 저에게도 원하는 게 있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할머니 소감을 들으면서 여기저기 훌쩍거림이 이어졌다. 저마다 사연들은 다르지만 참고 견뎌내야 할 고통이 있었고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사느라 돌보지 못한 자신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비난받아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남을 위해, 가족을 위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대에 맞추어야 살 수 있다. 이런 인식 탓에 자신이 원하는 걸 알아차리는 자체가 고통이다. 어차피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좌절감이 크다. 특히 여성의 경우 이런 비판에 더 취약하다. 여성들은 가족과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을 가장 아름다운 미덕으로 교육받아왔다. 자신의 욕구를 참고 억누르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좋은 엄마, 나쁜 엄마 신화가 대표적이다. 아이가 잘못되면 모두 엄마 탓이다. 엄마가 잘못해서 아이가 비뚤어졌고 엄마는 아프고 힘들어도 아플 수 없다. " 제가 뭘 원해도 되나요?"라고 물은 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자식을 잘못 키운 죄책감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젊어서 이혼을 하고 딸, 아들을 최선을 다해 정성스럽게 키웠는데 아들이 결혼해서 이혼을 했다. 이혼 후 아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하고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지낸다. 아들이 결혼 생활하면서 낳은 손자가 있는데 할머니가 키우고 있다. 손자가 사춘기가 되면서 게임 때문에 날마다 싸운다. 학교 다녀오면 가방 던져놓고 게임을 한다. 아무리 야단을 쳐도 듣지 않는다. 욕설에 잔소리에 모진 소리를 하지만 손자는 할머니 말을 듣지 않는다. 할머니는 이 모든 일이 모두 자신이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는 자책으로 평생을 보내고 있다. 자식들 어렸을 때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그때 아이들을 좀 더 잘 돌보았더라면, 아들에게 살갑게 대했더라면... 모두 엄마가 잘못해서 이렇게 됐다. 손자를 돌봐야 하는데 죽을 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러다 오늘 처음으로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한다. " 원하는 게 있어? 바라는 게 뭐야? " 홀가분함과 자유로움. 자식들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아플 여유가 없다는 말에 사랑이 떠올랐다. 순수하고 더없이 높은 사랑, 엄마의 사랑이 떠올라 순간 숙연해졌다.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 그 공간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단하고 힘들지만 결코 죽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않은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전해져서 함께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