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문제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자기표현의 꽃, '거절'

by 남정하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당황스러울 때가 언제일까? 단연 엄마 말을 듣지 않을 때일 것이다. 엄마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 그렇게 말 잘 듣던 아이가 요즘 입만 열면 반항이에요. 싫어요. 안 할 거예요. 엄마 마음만 마음이에요? "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군소리 없이 따라 하던 아이의 갑작스러운 돌변은 엄마에게 충격이다. 온통 머릿속은 어떻게 대화를 하면 옛날 말 잘 듣던 아이로 다시 돌아가게 할까 고민이다. 처음에 말로 아이를 공감하려 노력하지만 꼭 해가야 할 과제나 약속, 학원 일정을 거부하고, 싫어하는 아이를 볼 때 힘을 써서라도 엄마 말을 듣게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엄마들은 순전히 아이들을 위해서 이 모든 노력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시기에 아이가 원하는 대로 했다가 나중에 오히려 부모가 원망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는다. 말 잘 듣던 아이가 온갖 이유를 대면서 엄마 말을 무시하기 시작해서 고민이라는 엄마들에게 자녀 연령을 물어보면 정말 다양하다. 7세라고 답하는 분, 3세, 초등 2학년, 3-4학년은 기본이다. 본격적이로는 사춘기가 시작되는 5-6학년이 되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 엄마들의 걱정은 아이 사춘기가 앞당겨졌다는 점이다. '싫다'라고 떼쓰고, 거부하고, 반항할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말 머리가 하얘진다. 화만 난다. 참거나 폭발하거나 둘 중 하나다.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로 하게 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겠지만 길게는 결국 도움이 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자녀의 '싫어' 소리를 듣는 자체가 힘들다.






자녀가 그동안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했다는 말은 부모 말에 순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가 커가면서 부모의 기대를 자신 고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내적 동기로 받아들여 즐겁고 흥미 있게 해 나간다면 괜찮다. 하지만 부모 말을 거역할 때 문제가 되는 두려움, 죄책감, 수치심, 의무감, 보상이 뒤따르는 동기를 위한 행동이었다면 억눌렀던 자기표현이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하다. 부모님들을 만나면서 자녀의 '싫어'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해 자주 이야기 나눈다. 큰 아이가 순하고 엄마에게 잘 맞추는 성향이었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원하는 욕구가 명료한 편이라 순하고 느린 큰 아이에게 대부분 강요하고 명령했던 것 같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주 화를 냈고 기대대로 되지 않을 때 답답해했다. 2월생이라 친구들보다 한해 일찍 학교를 간 아이가 순진하고 해맑은 성격 때문에 학교에서 자주 준비물이랑 챙겨야 할 과제를 알림장에 적어오지 않아 엄마 혼자 발을 동동 구를 적도 많다. 엄마 시키는 대로 하면 안전하고 편안했다. 아이가 3-4학년 때까지 학원 보내줄까? 하면 " 엄마랑 공부하는 게 좋아요"해서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던 우둔한 엄마다. 자주 두려움, 죄책감, 수치심을 이용해서 아이를 움직인 덕분에 아이가 5학년 사춘기 무렵이 됐을 때 얼굴 가득 분노와 사무친 원한이 가득했다. 뭘 물어보면 " 잘 몰라, 엄마 마음대로 해. 아무거나, "로 대답해서 아이에게 네 의견을 말하라고 해도 엄마의 권위적이거나 강압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거절을 하는 일이 어려웠다. 나도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아이 뜻을 모르니 그냥 흘러가게 됐다. 거절하고 거부하고, 반항을 해야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알 텐데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아들 노릇에 익숙한 아이가 때론 힘들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마마보이라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되면서 화를 내면서 '하기 싫어'하는 소리를 듣는데 그제야 안심이 됐다. 실제로 내 습관대로 키운 결과로 엄마의 욕구에 순종하는 아들로 키웠지만 내가 원하는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바담풍( 바람 풍- 혀가 짧아서 바람 발음이 안됨 ) 하지만 너는 바담풍 하지 않게 키우고 싶었다.






그때부터 큰 아이의 거절 표현은 나에게 꽤 명료하게 다가왔다. " 엄마가 원하는 걸 하고 싶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건 다른 거예요. " 순종하면서 내 말을 따라 할 때는 들리지 않던 아이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다. 아이의 거절이 반가웠다. 상대의 말을 거절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존중받을 수 있다. 아주 오래된 일화인데 부모교육에서 자주 전했던 사례이다. 정신과 의사였던 이시형 박사가 학교에 강연을 가서 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선생님들은 당연히 반에서 말썽을 부리는 소위 노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시형 박사 앞에 갔다. 이시형 박사는 " 이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있는 아이들이니 가서 반에서 가장 모범생 아이들을 데려오세요"했다는 일화가 있다. " 여러분은 자녀가 어떤 이유로 그것을 하기를 원하는가?" 마셜 로젠버그는 이런 질문을 한다. 아이들이 두려움, 죄책감, 수치심, 의무감 혹은 상벌 같은 보상 때문에 우언가를 하길 바라는지 묻는 질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부모들은 부모의 말을 자녀들이 어떤 이유로 듣기를 원하는가? 자신만의 답을 찾는 시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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