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할때, 거절 들을때 두려운 당신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자기표현의 꽃, '거절 '

by 남정하


누군가에게 거절할 때나 거절을 들을 때 둘 다 두렵다. 상대가 거절을 자신이 싫어서 그런다고 오해할까 봐 두렵다. 거절하면 멀어질까 봐, 외톨이가 될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쉽게 거절하기 어렵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부탁에도 쉽게 거절을 못한다. 내 경우 내 부탁을 상대가 들어주지 않을 때 존재에 대한 좌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부탁이 거절될 때 내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되도록 다른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편이다. 부탁을 들어주는 것보다 거절이 더 어렵다. 마음이 힘들다고 지인이 연락해 올 때 특히 거절이 어려웠다. 통화로 매일 듣는 속상한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듣느라 귀가 아파서 베개에 전화기를 기대 놓고 건성으로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해 들어줄 때 원했던 건 내가 힘들 때 마음을 다해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결국 상대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나 자신이 거절될 때 받는 상처 때문이었다. 관계가 손상될까 봐 두려워 거절을 하지 못하는데 오히려 ‘자기표현’을 못해서 관계가 멀어지고 단절로 이어진다. 가장 가까운 사이 관계가 끊어지는 경우를 살펴보면 그만큼 관계 유지를 위해 애쓰고 노력한 사이인 경우가 많다. 거절이 자유롭지 못하거나 상대가 거절을 거침없이 하는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굉장히 오랫동안 마음을 나누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사이였는데 지금은 아는 척만 하는 관계가 됐다.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대가를 관계의 단절로 치르고 있는 셈이다. 거절하지 못해 힘들었던 마음의 상처는 지금도 마음에 살아있다. 사람과 관계를 잃고 끊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예전엔 꽤 마음을 자주 나눈 사이였는데 말이다, 떠올리면 누구나 이런 관계가 있을 것이다. 요즘은 가족끼리 서로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로 안 보고 연락하지 않을 때 가장 편안한 관계. 가장 가까운 사이가 이렇게 멀어지게 된 이유가 뭘까 생각하면 멀어질까 봐 두려워서 말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거다. 모두 ‘자기표현’을 솔직하게 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게 아닐까?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절이 자유로워야 한다. 언제든 할 수 있고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을 때 선택할 수 없다. 이 일을 언제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얼마만큼 하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을 때 자율성이 싹튼다. 자율성은 일을 하는 기쁨, 성취와 연결되어 자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거절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존감의 원천이 된다. 자신의 느낌, 생각, 원하는 것에 바탕을 둔 자기 결정권 행사이다, 자신이 싫은 것을 싫다고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결정권의 권리가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생각하게 된다. 자기 결정권에 “ YES "의 선택만이 인정되고 존중되었던 문화였다. 특히 어린 시절 자녀들, 여성들은 문화적으로 자신에게 자기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 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순응을 강요당해왔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가 자기 의견을 말하도록 존중하고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하지만 공부 문제, 특히 직업선택과 명문대학 진행에 관해서는 아직 인생의 결정권이 자녀에게 있지 않은 것 같다. 자녀 의견을 존중하고 선택하게 하는 이유가 열심히 공부하게 하기 위한 길로 이어진다. 결국 부모 기대대로 살기를 원하고 죄책감이나 불안감 없이 ” 아니오! “ ” 싫어요 “ ” 제 뜻대로 하고 싶어요 “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통제한다. 그런 건 대학 가서 해도 충분하다고 가르친다.

큰 아이 기를 때 고민이 있었다. 이 아이가 뭐 먹을래? 물으면 “ 엄마 먹는 거 먹을래요 ”

“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없는데! 아무거나 ” 어디서 먹을래? 물으면 “ 아무데서 먹어도 괜찮아요”라고 대답해서 속이 터졌던 적이 있었다. 아이에게 생각을 물어보면 “ 몰라, 잘 모르겠는데? ” 화가 나서 한동안 넌 머리가 있는데 그 좋은 머리 안 쓰고 무슨 생각으로 사냐고 물으면서 생각하고 살라고 화를 냈다. 자녀들이 초등학교 5-6학년이 되면 뭐라고 말하면 혼이 나지 않는지 나름 생각이 생긴다. 의견을 말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꼬치꼬치 묻고 그거보다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냐고 설득했다. 결국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사는 게 가장 편안하다는 걸 깨우친 것 같다. 그렇게 큰 아이 의견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일을 두루뭉술, 긴가민가 애매하게 대답하기 시작한 게 사춘기 무렵이다. 어느 날 친구들이랑 게임방을 들락거려서 교무실 불려 가는 일이 잦아졌다. 혼을 내도 고쳐지지 않았는데 늘 대답은 자신은 갈 마음이 없었는데 친구들이 가자고 해서 갔다는 거다. 그 대답을 듣고 화가 치솟았다. 남 핑계 대는 아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친구들이랑 어울려 게임하는 게 재미있어서 가게 됐다고 이야기하길 바랬다. 그러면서 평소 부모와 관계에서 ‘ 아니오 “ 연습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거절해도 관계가 멀어지거나 단절되는 게 아니라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친구관계에서도 거절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래들 사이에서 잘못된 유혹에 빠질 때 ’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 자기표현‘이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결국 큰 아이의 자기표현의 걸림돌은 엄마인 나였다. “ 이 모두 엄마에게 맞추기 위한 표현방식이 아닐까? ” 이런 추측이 떠오르자 아이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머리로는 자녀가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다고 ” NO " 하길 바라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수용하고 있는지 물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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